“주체적 삶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주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요”
창작집단 <도르리> 인터뷰

창작집단 <도르리>는 ‘기찻길옆작은학교’ 공부방에서 만난 20,30대의 젊은 작가 네 명이 2011년 에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김중미 선생님과 함께 어린이 잡지를 제작하면서 구성하였다. 동네 곳곳을 누비며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는 그들이, 올해 11월에는 만석동에 대하여 기록한 <동기>전을 인천 화수동 작업실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는 ‘기찻길옆 작은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목수전>이라는 전시로 주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제주도 방언 ‘도르리’라는 말처럼 그들이 자그마한 공간에서 나누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도르리 팀원 김성수, 오정희와 ‘기찻길 옆 작은학교’에서 일하는 유동훈 씨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기찻길옆작은학교 아이들과 함께 <꼬마목수>를 전시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유) 아이들과 제작한 목공예 작품을 활용해 전시를 기획했어요. 지역과 자기 동네를 표현한 모습을 동네 주민들에게도 보여주고 세상에 알리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의 작품을 통해 연대하는 지역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했어요. 저희는 만석동이라는 가난한 지역에 살고 있지만 다른 곳의 소외되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과도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판매해서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이 담긴 작품으로 주변 사람들과 연대해서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의미에 기획하게 되었죠.

 
<목수전> 전시입구와 전시 소개

아이들과 목공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면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엄지손가락은 발달하는데 수작업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직접 물성을 느끼면서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보았죠. 그리고 여자 아이들의 경우는 공구를 사용하면서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목수전> 전시를 통해서 주민들과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요.
김) 일단 아이들이 <목수전>을 통해 주체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표현할 수 있던 시간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다른 곳과 연대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기도 하였고, 아울러 지역 어르신들에게도 큰 힘과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8월 7일부터 8월 17일까지 창작집단 <도르리>에서는 아이들이 장기간에 걸쳐 작업했던 목공예 작품을 전시한다.

<나무에 옮긴 내 사진>은 실크스크린을 활용해서 자투리 나무에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각자 바라는 것, 혹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 내 마음속에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을 담았다.

아이들이 직접 제작한 독서책장인 서함이다. 서함 디자인의 핵심부는 다리모양으로, 아이들도 자기가 원하는 다리 모양을 만들었다.
각자 만든 서함 전면에는 깔때기 모양의 주차금지 표지판이 공통으로 그려져 있다.
주차금지 표지판은 공부방 아이들이 자기의 놀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상에서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친숙한 대상이다.

11월에는 <동기>전시를 계획 중이십니다. 전시를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나요?
오) 현재 만석동에 남아있는 집이나, 그전에 살았던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어요. 아직은 주민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지 않았지만, 차츰 만나서 얘기를 나누려 하고 있어요. 

김) 제 시선으로만 그림을 그리다가 보니 작업이 점점 힘이 드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한번씩 대화를 시도 하려고 해요.

창작집단 <도르리> 구성원인 오정희(좌), 김성수(우)

만석동에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 저는 강화에서 주로 살다가 20살이 되었을 때 만석동으로 넘어왔고, 현재는 화수동에 살고 있어요. 처음에 만석동에 왔을 때 집이 이쁘다는 인상을 받았고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주민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애착이 생겼었죠. 그런데 제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점차 여러 집들이 제 눈앞에 사라져 가는 것을 목격하였어요. 이러다가 동네가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네의 모습을 그림과 공예품으로 하나씩 기록하게 되었어요.

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만석동에서 살다가 결혼생활을 시작으로 강화로 옮겨가게 되었어요. 그 때 당시의 만석동이 지금의 화수동 모습과 비슷했었죠. 한 공간에서 같이 먹고자는 일을 생활 하는 만큼 정겨운 동네의 모습이었는데, 어느 날 재개발 소식이 들리면서 여러 집들이 없어지고 무너지는 일들이 빈번해졌죠. 동네 친구들이 살던 집이 하나 둘, 씩 사라지고, 만석동에서만 볼 수 있던 집 구조가 없어지게 된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만석동만이 가진 독특한 집의 형태는 무엇인가요?
오) 만석동은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와서 땅을 파고 기둥을 세워 임시로 거처하던 동네였어요. 임시로 활용하던 곳에 집을 덧대서 올렸기 때문에 집이 엄청 작아요. 제가 살던 집도 7평밖에 안되었는데, 그곳에 약 열 명의 식구가 옹기종기 살았었죠. 사다리를 타고 부엌과 다락방을 오고 간 흔적과 벽에 이것저것 덧대다 보니 각기 다른 벽 모양을 갖추고 있어요. 어쨌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가난했지만, 형편이 닿는 만큼 꾸며서 살았던 것 같아요.

김) 저는 만석동의 집을 처음 봤을 때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옛 만석동 주민들의 삶이 집에 반영된 것 같았거든요. 생계를 위해서 굴 껍데기를 까는 일을 많았는데, 그 껍데기를 버리지 않고 빻은 후에 시멘트에 섞어서 집 지을 때 사용했었죠. 벽의 오돌오돌한 질감 자체가 일반 시멘트보다 친숙하게 다가오더라고요. 현재는 이 집(기찻길옆작은학교)이 현재 한 채만 남아 있지만, 옛날에는 벽하나를 두고 여러 개의 집들이 일렬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집 앞에 화분도 색깔별로 놓여 있다 보니까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았죠.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자기 공간을 꾸미고 사는 모습 속에서 사람 냄새가 많이 배어 있는 것 같았어요.

만석동에서 작업할 때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아요.

오) 처음에는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동네를 답사했을 때 빈집과 노인들이 많아져서 동네가 점차 쇠락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김) 곳곳에 드러난 김치공장이나 큰 건물이 마을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정작 주민들에게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어요. 다른 마을 사람들이 그 자리를 활용하고 있으니까 재개발 사업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죠.

<도르리>에서는 만석동만의 독특한 집의 형태를 공예품으로 제작하였다. 사진에서 보여진 집 모형은 초기의 기찻길옆작은학교의 공부방의 모습으로 <동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동네를 바라보는 내부자와 외부자의 시선이 많이 다르게 느껴지네요. 작업을 함께 진행하면서 의견이 부딪힐 때도 있지 않나요?
김) ‘기찻길옆작은학교’에서 제가 학생이였을 때 오정희 선생님은 이모였어요. 저한테는 선생님과 마찬가지죠. 그렇기 때문에 작업할 때 가치관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다만 그림 스타일이 워낙 달라서 힘들었죠(웃음).

오)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인형극을 제작했거든요. 오랜 시간 의견을 조율해서 인형을 만드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도르리에서도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동기>전시를 하기 전에 이전에 <집>이라는 소재로 공예품을 제작하셨어요. 동네를 담아내고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작업 변화의 계기가 있는가요?
김) 개인적으로 혼자 애니메이션을 그렸을 때는 쉽게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근데, 마을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동네에 변화를 줘야겠다 혹은 (재개발을) 막아야겠다는 선동적인 생각으로 작업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제 느끼는 거지만, 큰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는 마을의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작업해요.

오) 결혼하면서 강화로 이사를 갔거든요. 그 전에는 만석동에 살면서 동네 아이들을 마치 제 동생처럼 생각했죠. 강화로 가서 아이를 키우고 다시 만석동으로 오니, 그때 왜 내가 동네를 더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크더라고요. 이제라도 스스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 모형을 만들고 어떤 ‘장면’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도르리>작업실을 어떻게 운영하실 계획이신가요?
문화예술 창작공간답게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려고 해요.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고, 주민들에게도 언제든지 열려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이곳에서 동네가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요. 

 
문화예술 창작공간 <도르리> 입구

 

글/사진 이진솔(정책연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