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용 방석에서 ‘즉흥의 매력’을 읽는다는 것 <2018 PUMP>
8월이다. 이는 곧 찌를 듯한 매미 소리의 시작이요, 추석 다음으로 인구 이동량이 가장 많다는 휴가철의 시작이기도 하다.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인고의 시간을 거친 매미가 우화(羽化)한다. 계절을 알리는 알람 소리처럼 누가 맞춰놓은 것도 아닌데, 자연의 시간에 맞춰 폭발하듯 울린다.’ 성충이 된 매미와 휴양지로 향하는 사람들. 시간과 공간의 무수한 이동 속에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번 네트워킹 데이에는 의자 대신 방석을 깔아주세요.”
지난 20일,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에서는 작은 파티가 열렸다. 인천문화재단에서 기획한 ‘2018 공연예술인 역량강화 프로그램 펌프(PUMP)’의 끝을 기념하는 네트워킹 데이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했던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남의 시작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료식’을 곁들인 파티이지만, 행사장의 공기는 제법 남달랐다. 50평 남짓 되는 연습실에는 의자 대신 방석이, 그것도 무려 ‘등산용 1인 방석’ 50개가 전부였다. 이는 진행 멘토인 임형택 감독의 요청이었다.
“콤포지션(즉흥장면 만들기)을 해야 하니, 최대한 공간을 비울 수 있도록 의자를 뺍시다.”
세팅이 끝난 연습실을 보며, ‘이거 그림이 나오려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의도된 연출이라지만, 부푼 기대를 안고 온 참가자들이 텅 빈 행사장에 물음표를 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러나 앞선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공간에 들어온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한가득이었다. 비로소 모든 참가자가 자리에 앉았을 때, 지난 생각이 바뀌었다.
뷰포인트 메소드 워크숍의 시작
본 프로그램은 ‘전문공연예술인을 위한 심화과정’과 ‘기초자를 위한 입문과정’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전문 공연예술인에게는 양질의 창작물을 제작할 역량을 제공하고, 입문과정에 있는 신진예술인과 예술에 관심이 있는 시민에게는 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한(또는 향유하기 위한)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 기획목적이었다.
2018 펌프(PUMP)의 첫 신호탄은 ‘뷰포인트 메소드(Viewpoints Method)’를 활용한 신체워크숍. ‘뷰포인트’는 미국의 포스트모던 무용계에서 발현된 즉흥 테크닉으로 뉴욕대학교 연극과 교수인 매리 오버리(Mary Overlie)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동대학교 연출가인 앤 보가트(Anne Bogart)’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뷰포인트 콤포지션 메소드는 크게 ‘뷰포인트 트레이닝’과 ‘콤포지션 창작 메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움직임과 시공간에 대한 지각을 극대화하여(뷰포인트) 작품 일부를 만들어내는 즉흥과정(콤포지션)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퍼포머에게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이슈가 지배적이다. 극의 시작부터 후반부까지 유기적인 시공간 속에서 창작물이 발현된다. 이러한 속성은 ‘뷰포인트 메소드’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수많은 공연예술 장르를 불문하고 공통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고민하던 끝에, 무대와 퍼포먼스 간의 상호작용에서 ‘시공간적 요소’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결론을 내렸다.(일례로, 뷰포인트를 체계화한 미국의 SITI COMPANY에서는 연극뿐만 아니라, 무용, 음악, 미술,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본 메소드를 수행하도록 이끌고 있으며, 실제로 훈련을 체득한 예술인들은 다양한 창작물에 뷰포인트를 투영시킨다) 진행은 우리나라에 뷰포인트를 제일 먼저 도입한 극단 서울공장의 임형택 예술감독과, 예술강사로 활동 중인 윤채연 배우가 맡았다.
우리는 신체를 활용하여 ‘지속(Duration)’, ‘반복(Repetition)’, ‘즉각반응(Kinesthetic)’이라는 시간적 속성을 가지고 놀거나, ‘모양새(Shape)’, ‘환경(Architecture)’, ‘흐름의 형태(Floor Pattern or Topography)’ 등 공간적 속성을 탐험하였다. 이러한 움직임들을 통해 자연스러운 무대 위 표현과 앙상블 훈련을 마친 이후에는 앞서 터득한 요소들을 활용해 즉흥으로 동작을 만들어보는 콤포지션(Composition)을 시도했다.
* 본 설명에서 나열된 단어들은 SITI COMPANY에서 소개하는 테크닉에 등재하는 용어들로, 정확한 개념설명을 위하여 영문명을 함께 기재하였습니다. 본 메소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내에 출간된 ‘뷰포인트 연기훈련’ 서적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전문 퍼포머가 아닌 입문과정에서는 본 메소드가 더욱 생경할 터. 이에 우리는 기존 뷰포인트의 목적을 두 갈래로 나누었다. 퍼포머들에게 훈련의 목적이 ‘자연스러운 무대언어 체화와 앙상블의 조화’라면, 입문과정의 참가자들에게는 ‘신체를 통한 새로운 발견과 일상 밖 경험’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따라서 동일한 메소드지만 연극놀이나 연극치료 등을 가미하여 정통의 방식에서 조금 더 다각적인 워크숍으로 재구성하였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는 발바닥을 맞대는 게 어때요?”
(앞으로 돌아와서) 네트워킹 파티의 시작을 알리고 제일 먼저 수료증 전달식이 진행되었다. 최진용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의 인사말과 함께 호명되는 참가자들은 각자의 이름이 적힌 수료증을 받아들었다. 수료인원은 총 35명 중 31명. 아쉽게도 수료증을 받지 못한 참가자조차 박수를 치며 함께한 이들을 축하했다.
뒤이어 워밍업을 위한 간단한 연극놀이를 시작으로 그동안 터득한 요소들을 함께 꺼내어보는 ‘오픈 뷰포인트(Open Viewpoints)’와 콤포지션을 진행하였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명함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대신, 몸짓을 명함 삼고 손대신 발을 내밀어 서로를 환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 달여간의 워크숍을 통해 누군가는 뷰포인트가 여전히 어렵다고 하고 다른 혹자는 제주행 쾌속선을 탄 듯 6주가 훌쩍 지났다고 한다. 이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니, 아쉽지만 또 다른 해를 기약하고자 한다.
워크숍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으레 여름이 되면 매미가 울고, 많은 인파가 휴양지를 향해 떠나가듯이 말이다. 입문과정의 첫 수업에서 ‘뷰포인트는 일상 속 선택과 자유의 폭이 넓어지게끔 하는 매개체‘라는 윤채연 멘토의 말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오랜 시간동안 멈추어있던 연습공간의 가압펌프들이 ‘예술펌프’로 다시 가동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으니 말이다.
글/ 인천문화재단 공간문화팀 강수연
사진/ 김희천 작가
*공연예술인 역량강화 펌프(PUMP)는
다양한 매개를 기반으로 인천에서 활동하는 공연예술인들이 양질의 창작물을 제작하도록 도모합니다. 공간의 모태인 상수도 가압장 속 펌프가 ‘흐름’, ‘공급’, ‘교류’의 상징이듯이 지속적인 프로그램(Permanent Program), 지속적인 프로젝트(Permanent Project), 그리고 지속적인 공연예술(Permanent Performing Arts)을 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