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흥초 기타동아리-너랑나랑 기타반
어느 수요일 저녁,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텅 빈 초등학교. 조용하던 음악실에 환한 불이 켜졌다. 아름다운 통기타 선율이 흐르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더해진다. 인천 동구에 위치한 서흥초등학교에는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함께하는 기타동아리가 있다. 앙증맞은 책상과 의자에 앉아, 귀여운 그림이 가득한 칠판을 배경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그들을 만나보았다. 시작은 작년이었다. 서흥초등학교가 행복배움학교(인천형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학부모 회장인 이정휘 씨는 학교를 아이들과 선생님만의 배움터가 아니라 학부모들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정휘 : 학부모 동아리를 만들고 활성화하기 위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어요. 직장 생활을 하시는 학부모님들도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다보니 기타를 배워보자는 결론이 나왔죠. 학부모 대상이라고 하면 제한적인 부분이 있어 마을공동체의 느낌으로, 지역주민들도 참여하고, 우리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어요.
아이들의 엄마로, 주부 또는 직장맘으로 자신만의 시간 없이 바쁘게 지내던 그들은 하나 둘씩 기타동아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장동희: 학급의 학부모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학부모회장 언니가 내미는 동의서를 받게 되었어요. 올해 3월에 신학기가 되고 뒤늦게 합류했어요. 원래는 악기를 다뤄본 적도 없는데 여기에 와서 처음 하게 된 거죠. 늦게 합류한 만큼 따라잡고 싶어서 다른 멤버들을 많이 괴롭혔어요. 옆에 언니들이 귀찮은 기색 없이 잘 가르쳐주고 도와주셔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이애경 : 예전에 기타를 배웠었어요. 20대 때, 신포 지하상가 끝에 있는 악기점에서 악기를 사면 강습을 해주고는 했었죠. 그렇게 잠깐 기타를 배웠는데 시간이 지나니 기타를 배우거나 쳐 볼 기회가 아예 없는 거예요. 오래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학교에서 학부모 동아리를 만든다고 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정영선 : 큰 아이가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기타를 하나 장만했는데, 아이가 금방 질려하면서 기타가 잠자고 있게 된 거예요. 마침 학교에서 기타를 가르쳐주고 함께 연습한다고 해서, 악기의 ‘악’자도 모르지만 용기를 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차연정 :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는데, 원해서 다닌 게 아니라 엄마의 강요로 다니다보니 흥미가 없었어요. 음악을 즐겼다기보다는 억지로 다녔던 거죠. 그동안 기타를 배우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돼서 못 배우다가 마침 저녁에 수업을 한다고 해서 찾게 되었어요. 노래를 듣고 부르고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인데, 기타수업과 함께 음악을 즐기면서 힐링을 하고 있어요. 또, 아이도 기타를 배우고 있는데 ‘너만 해라.’ 강요하는 게 아니라 같이 배우는 입장이 되니 서로 마음도 이해할 수 있고 이야기 거리도 많아지고 해서 대화가 편해진 것 같아요.
한준희 : 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기타반도 있었는데, 중학교에 올라간 이후에 기타가 멋있고 재밌어 보였어요. 마침 엄마가 학부모 기타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제안하셔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녀들은 무언가를 배우고 자신들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주일에 한 번, 이 시간뿐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시간을 내서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악기를 다루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에게 화도 나지만, 연습 끝에 함께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낼 수 있는 데에 희열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모일 수 있는 이유는 단지 기타나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함께 모여 기타를 연습하는 시간은 친한 언니, 동생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만든 데에는 기타반 강사 박수희 씨의 역할이 한 몫 했다.
박수희 : 저도 기타를 본격적으로 배운 지는 10년째에요. 지금 동아리 참여하는 분들의 나이에 시작을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늦게 시작한 셈이죠. 그때도 강좌를 들으면서 시작했는데, 동아리의 형태로 함께 묶이니까 그 멤버들과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기타를 치게 되었어요.배다리에서 기타교실을 열었었는데, 서흥초의 김창진 선생님께서 그 소식을 듣고 학부모 기타동아리의 강사가 되어주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이전에 방과후학교 강사로 수업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는데, 기대했던 것과는 차이가 많았어요. 수업을 듣는 아이들도 즐거워서 하기보다는 마지못해 오는 아이들이 많았고, 선생님들이 방과후 강사를 섭외하고 수업을 만드는 과정을 주 업무가 아니라고 생각해 소홀히 하거나 강사를 배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학교는 달랐어요. 시스템도 훨씬 좋고 참여하시는 분들도 진짜 좋아서 오시는 분들이어서 저도 가르친다는 생각보다는 동아리의 일원으로 즐겁게 참여하고 있어요. 사실 소음을 발생시키는 동아리의 경우 공간을 마련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지원을 받기도 어렵고, 우리만의 공간을 가지려면 임대료도 드니까요. 공간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학교가 지역주민들에게 공간을 나누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특히 초등학교는 정말 가까이들 있잖아요. 하지만 학교가 동네 주민들하고 너무 격리되어있고, 문을 딱 걸어잠그고 열어주지 않으니까 아쉬웠는데 학교에서 이 수업을 제안해주었고, 학교와 지역주민 간에 교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오게 되었어요.
서흥초 학부모가 아닌 지역주민 김혜례 씨도 활발하게 참여하는 동아리 멤버 중 한 명이다.
김혜례 : 친한 동생의 소개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제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손님으로 오던 동생이 미용실에 있는 기타를 보고 치냐고 묻기에 폼으로 갖다 놓은 거라고 대답을 했죠, 그랬더니 학교에서 기타 수업을 듣고 있는데,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묻더라고요. 고 1때 옆집 오빠가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보고 그게 너무 멋있어서 아빠에게 기타를 사달라고 졸라 얻어낸 기타였어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 기타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잘 치지 않아 동생이 가지고 있었는데, 다시 돌려달라고 부탁을 했죠. 수요일이 미용실 쉬는 날이라 매주 참여하고 있어요.
올해로 두 해 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기타동아리는 무대에 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것도 계획 중이다.
이정휘 : 11월 즈음에 학교 학예회가 있어요. 아이들 동아리 발표회인데 학부모들도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작년에는 학부모 합창 공연을 했는데, 올해는 기타동아리 공연을 목표로 연습 중이에요. 또, 동구청에서 ‘나들이 강좌’라고 해서 수업을 열면 수강료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올해 저희 동아리가 선정됐거든요. 10월 즈음 선정된 동아리들의 발표회가 있는데, 그 무대에도 설 예정이에요.
정금선 : 저는 저질 체력이기도 하고, 아이가 세 명이라 아이들 학원시간에 맞춰 집에 데려다주고 바로 수업에 오려면 힘들기도 해요. 하지만 연습하면 할수록 욕심이 나요. 하이코드를 잡아보고 싶다는 욕심도 나고, 11월에 있는 학예회 때도 사람들에게 엄마들이 이렇게 기타도 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주를 해보고 싶어요.
엄마로, 아내로만 사는 삶에 지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취미로 시작했던 기타는 그녀들의 일상을 하나둘씩 바꾸기 시작했고, 더 멋진 엄마, 더 멋진 아내,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김소희 : 우리 아이가 어버이날에 편지를 썼는데, 엄마를 ‘기타 잘 치는 사람’이라고 써왔더라고요. 평상시에 기타 연습을 하는 모습이 아이에게 좋게 보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학교에 있는 기타로 연습을 했는데, 한번 수업을 듣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 다시 오면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더라고요. 20년 전 창고에 넣어두었던 기타가 떠올라서 집에 연락했더니, 다행히도 아직 기타가 있어서 다시 가지고 온 날부터 이를 악물고 연습을 했어요. 그런 모습을 아이도 자랑스러워 해주니까 더 자신감이 붙더라구요.
장동희 :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그러다 보니 저희 아이도 저와 똑같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가 2학년이 되고부터 학부모 모임에도 조금씩 참여를 하기로 결심했고, 동아리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1학년일 때부터 이어져 온 학부모 모임에 뒤늦게 합류하다 보니 겉도는 느낌이 많았는데, 동아리에서는 가족처럼, 언니, 동생처럼 챙겨주니까 재미있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언니들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고 용기를 많이 주시니까 더 열심히 연습하고 활동하게 돼요.
이춘화 : 남편이 브라질에 있는데, 12월에 한국에 들어와요. 기타를 배우면서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남편이 전화로 “기타 잘 배우고 있냐”고 물어봐 줄 때면 더 열심히 해서 한국에 들어왔을 때 연주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같이 활동하는 분들이 잘 끌어주고 계셔서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함께 해야겠다 싶구요.
자신의 이름 대신 ‘진영 엄마’, ‘희진 엄마’로 불리기 일쑤인 엄마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그들의 이름을 듣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곳 기타동아리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서로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매 시간마다 출석부를 부르고,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자기소개를 하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는 사람들. 기타를 잡으며 엄마나 아내가 아닌 스스로를 다시 찾아가고 있는 그들의 행복한 웃음이 앞으로도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
글 / 시민기자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