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언어로 이야기되는 ‘불온한 사건’

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8 사건과 공동체>


7월 7일 토요일, 인천 아트플랫폼 H동에서는 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8 사건과 공동체>가 열렸다. 내가 참여한 12시 타임의 포럼은 ‘4.16 세월호 : 불온한 사건을 마주한 예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안산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를 운영하는 송지은 씨의 프로젝트 발표 및 참여자들과의 질의응답과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로컬 큐레이팅 포럼’이라는 말에서 내게 익숙한 단어는 ‘로컬’ 밖에 없었다. 그만큼 내게는 긴장될 만큼 어려워 보이는 행사였지만 ‘세월호’, ‘불온한 사건’, 그리고 ‘예술’이라는 키워드가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예전에 시인에 관해서 쓴 기사에서 거론한 바 있지만, 나는 ‘시인(=예술가)’이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서 예민한 감각을 세우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에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밥도 돈도 되지 않는 굉장히 비생산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한, 이 행위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아스팔트 사이에 핀 꽃이라거나, 거울에 서리는 김,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서 새싹이 나는 그런 일들. 혹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누군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지만 자신의 불편함을 세상에 토로하는 누군가, 돌보아주지 않아 혼자서 죽어가는 누군가. 우리 주변에서는 이미 빈번히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고하여 세상에 다시금 주목받게 하는 행위. 예술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예술이 가지고 있는 굉장히 중요하고 대단한 힘은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송지은 씨가 이날 발표한 두 가지 프로젝트는 <현수막 프로젝트>와 <응옥의 패턴>이다. 한가지 프로젝트만 두고 이야기를 하자고 해도 굉장히 길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기사를 쓰기 위해 메모장에 끄적거린 난삽한 글들이 꽤나 길고 (내가 쓴 글이지만 나에게도) 어려웠기 때문에- 이 두 가지 프로젝트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왜 시작된 것인지, 그리고 이것으로 인한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만을 이야기하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기획자이자 예술가인 송지은 씨의 생각과 이 모든 것들을 듣고 내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이야기하기 전에 한 번 더 언급하자면 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8의 타이틀은 ‘사건과 공동체’이다.


<현수막 프로젝트>발표의 첫 시작은 이 프로젝트의 소재가 된 ‘4.16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는가’였다. <현수막 프로젝트>는 안산 거리를 노랗게 수놓았던 단원고등학교 피해자 학생의 유가족들이 건 현수막이 시간이 지나면서 낡고 훼손되자 예술가들의 손을 통해 새롭게 보수하여 다시 걸어놓는 프로젝트였다.

2014년은 혼돈의 해였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으며, 그 피해자 중 대부분이 고등학생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나의 이야기인 양 분노하고 슬퍼했으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응원했다. 2, 3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에도 홍대입구역 1번 출구 앞에서는 기타를 치면서 노란 리본을 건네주는 손길들이 있었다. 그러나 요 몇 달 사이 그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다. 점점 세월호 사건이 자기 일인 사람들과 자기 일이 아닌 사람들로 나누어졌고 그들의 관계는 멀어졌다. 아직도 학생들의 유가족들은 그 시간을 잊지 않겠지만, 현수막이 바람이나 손길에 의해 찢어져 나가듯 사람들 사이에서 아마도 조금씩(혹은 빠르게) 흐려졌으리라. 심지어 그저 잊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마저 생겼다. 송지은 씨는 이 멀어진 그들의 사이를 어떻게 예술로 이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예술가들과 함께 현수막을 수리하고 보수하기로 했다.


유가족들을 설득하고 소통하며 함께 하는 과정은 줄줄이 설명하지 않아도 꽤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막을 고치고 새롭게 하는 예술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사주풀이나 공방에서의 테라피 등으로 유가족들과 관계를 맺었다. 세월호 사건에 관여된 사람과 관여되지 않는 사람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 서로 엮여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과정이었다. ‘노란색’이라는 의미 있는 특정 컬러에 고집하지 않고 조금 더 일상의 예술로써 접근하도록 다른 컬러를 사용하거나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시각적이거나 미학적으로 뛰어나기기 보다는, 실천하는 행위에 집중하며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상태나 감정에 대한 것이 더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이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로와 치유가 되는 예술인 것이다. 아무리 큰 사건이라 해도 정말 이것이 피부로 느껴지는지, 아니면 모니터 너머로만 들리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지에 따라 세월호에 대한 각자의 거리감은 굉장히 크다. 이 거리감을 좁히는 것이 바로 이 작업(예술)인 것이다. <현수막 프로젝트> 발표의 끝에서 송지은 씨는 ‘예술이 도구화된다고 하면, 그것이 예술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것은 본인과 프로젝트에 함께했던 예술가, 그리고 포럼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송지은 씨 본인은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지만 예술가로서 이러한 갈등-도구화되는 예술은 예술일까-에 직면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월호 사건에 대해 한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 이후, 새롭게 만들어지는 현수막의 형태 또한 기존의 틀(가령 노란색)에서 조금씩 바뀌었다고 한다. 사건에 관련된 사람, 관련되지 않은 사람을 떠나 이 사건 자체가 공동체 안에 있는 모두에게 느껴질 수 있도록 조금은 변형된 것이 아닐까.


두 번째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응옥의 패턴>이다.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있는 세월호 사건의 큰 피해자들은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다. 피해자의 대부분이 학생들이었지만, 분명 이들 외에도 또 다른 피해자는 있다. 왜 이주여성의 희생은 언급되지 않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신원확인 조차 되지 않는 이들의 죽음을 찾아보면서 송지은 씨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다고 했다. 죽음조차도 평등하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를 향해 위로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 한국 사회에 사는 이주민들의 유령 같은 삶을 주목하고 타국에서 죽음을 맞은 희생자를 위로하는 프로젝트. 그것이 <응옥의 패턴>이었다. <현수막 프로젝트>가 유가족들과 함께 현수막을 수리하는 그 과정 자체를 예술로 보았다고 한다면, <응옥의 패턴>은 일종의 설치 예술이었다. 어떠한 공간(야외)에 작품을 설치하고, 그곳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거나 물건을 만지고 옮기면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무용이나 영상 등의 다른 예술행위를 보여주었다.

이 공간에서는 작가들끼리의 규칙이 있었다. 프로젝트에 대해서(세월호 사건이나 희생자) 설명하지 않기. 사물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두기. 사물과 사람이 서로 생각을 얽히게 할 수 있도록 예술가는 관여하지 않기. 이러한 규칙은 사실 <현수막 프로젝트> 이후에 생겨난 것이었다. <현수막 프로젝트>가 어떤 의의를 두고 목적을 분명히 밝히며 나아갔을 때, 그 행위와 관련 없는 사람들은 그것이 뚜렷한 목적성을 가졌기 때문에 친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우린 이런 목적을 가지고 예술 활동을 하니까 이걸 보는 당신들도 이렇게 느껴’라고 말하면 극단적이겠지만, 이러한 방법이 오히려 폭력적인 강요가 되거나 생각을 가두는 프레임이 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또한 참여하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은 같은 주제를 가지고 표현했지만, 모두 똑같은 마음과 똑같은 시선으로 작품을 진행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건 가까이에 들어가서 작품을 꺼내왔다면, 누군가는 조금 멀찍이서 사건을 바라보고 작품을 꺼내왔다. 이러한 작가들끼리의 온도 차이 또한 일반 사람들과 작품 사이의 거리감을 줄일 수 있게 해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품이 설치되고 표현되었던 두 군데의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그곳에 배치된 물건들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들었다.


<응옥의 패턴>은 두 군데의 장소에서 각각 다른 방법으로 설치되었다. 설치된 두 장소 모두(안산 단원구 원곡동 외국인 주민센터 앞 광장(2016), 안산 단원구 원곡동 만남의 광장(2017)) 특정 전시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공공 공간이었다. 먼저 8시 50분 세월호가 침몰한 당시의 의자가 있는 집이라는 작품이 7일간 설치되었는데, 매일 아침 8시 50분이면 설치된 의자에 옆에 있는 폴대의 그림자가 의자에 드리웠다. 아무 설명도 없이 자유롭게 개방된 공간이었고, 의자 주변에는 송지은 씨가 베트남으로 리서치를 갔을 당시 마주했던 여러 물건(해먹이나 향, 식물 등)을 매일 위치를 변경하며 배치해놓았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그 공간을 둘러보거나 오브제들을 사용했다.

그 후에 조금 더 다양한 매개로 진행하여 사람들이 작품 안으로 참여하는 두 번째 <응옥의 패턴>이 설치되었다. 건축가, 안무가, 시각예술 작가들과 함께한 프로젝트로, 앞에 언급했던 작가마다 온도 차가 잘 나타나는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 ‘이동하는 섬’이라는 텐트가 여러개 설치되었는데, 이것들은 바람이나 사람의 손으로 쉽게 옮겨지는 것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개념적인 설명보다는 행위로써 표현하고 싶어서 안무가와 영화감독이 함께 한 이 작업은 마치 넋을 기리는 굿의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작품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거나 공간에 놓여 있던 오브제들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사용하기도 하며 참여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에 닿았다.


공동체는 일시적이든 일시적이지 않든 참여자를 모아야 발현이 된다. 그 공동체성은 각각의 경험이 부딪히면서 발현되는 것인데, <응옥의 패턴에>서는 그것은 누군가가 강요하지 않아도 예술가들이 서로 협업하거나 그 공간을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나타났다. 계속해서 언급했던 예술작품들 사이에 있는 그 ‘온도 차이’가 일반인들도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면서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송지은 씨는 말했다. 참여자와 예술이 분리되지 않는, 참여로 인해 예술이 되는 것. 송지은 씨가 지향하는 예술은 다양한 개념이 전이되는 형태와 가깝다고 한다. 어떤 물건이라기보다는 움직임에 가까운.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공공영역에서 진행되었으며, 예술가들끼리의 규칙(설명하지 않고, 제제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이 생긴 것 또한 이런 의의에서였다.
이어 <응옥의 패턴>에서 ‘패턴’이라는 키워드가 사용된 이유를 질문해보았다. 응옥(가명)이 죽음을 맞이했을 당시 입고 있던 흑백 줄무늬 티셔츠가 <응옥의 패턴>의 첫 시작점이었다. 패션으로써의 의미가 아닌, 줄무늬의 부정적인 기원(‘잡종 무늬’로 이방인, 창녀, 어릿광대, 범법자, 정신병자에게 줄무늬 패턴을 강요하던)과 역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우리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섞일 수 없는 이주민의 삶의 기호가 마치 줄과 무늬가 섞일 수 없는 패턴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응옥의 패턴>이라고 지었다.

꽤 어렵고 긴 발표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예민하고 불편한 문제를 소재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예술’에 대한 기존의 내 생각이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예술의 언어로 사회적인 사건을 기록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이 굉장히 좋았다.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 틈에 있는 희미한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 흐릿한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서 다시 사회가 지그시 바라볼 수 있도록 내보내는 것. 예술이 공동체 안에서 할 수 있는 아주 큰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가 관심을 가진 소재도 좋지만, 몇몇 소수의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발견해내는 것. 그것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많은 사람이 보고 듣고 또 다양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그리고 예술가는 그 사이에서 이루어진 소통으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 우리는 ‘나’라는 개인으로 ‘우리’라는 사회 안에서 살고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학생과 이주여성의 죽음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그래서 그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려는 송지은 씨의 예술이 나에게는 연신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멋진 일이었다.

 

글/사진
시민기자단 이은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