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living)이 곧 사는 것(buying)이라지만 – ㅎ 프리미엄 아울렛과 ㅌ 쇼핑몰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흔히들 우스갯소리 삼아 “사는 것(living)은 곧 사는 것(buying)”이라고들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도시의 삶에서 숨을 쉬듯이 우리는 무언가를 계속 삽니다. 끼니때 밥을 사 먹고, 요리하려고 식자재를 삽니다. 계절이 바뀌면 새 옷을 사고, 길 가다 눈에 띈 장신구도 또 하나 삽니다. 게다가 더워진 날씨에 아이스 커피를 자주 사 마시기도 합니다. 다 써버린 두루마리 휴지와 세제를 사서 채워 두어야 하고, 낡은 칫솔과 닳아버린 샤워타올도 새로 삽니다. 줄줄이 상품을 나열하지만, 우리가 사는 것은 상품뿐만 아닙니다. 출퇴근할 때마다 버스나 지하철 요금도 내고, 머리를 자르면 서비스 비용을 내고, 영화나 공연을 보기 위해 티켓을 사며,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도 입장권을 삽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거의 매 순간 무언가를 구매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는 도중에도 무언가 구매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구매하는 것들만큼이나 구매의 공간 또한 무척 다양합니다. 거리의 양옆은 온갖 가게들로 메워져 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에 갈 겁니다. 새로운 계절이 올때마다 한 번쯤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서 세일하는 상품이 없나 뒤적여 보겠지요. 그리고 가끔은 주말에 시간을 내어 작년에 가격이 비싸서 구매하지 못했던 옷을 사기 위해 아울렛에 가볼 것입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도시 한가운데까지 진출한 아울렛과 거대 규모의 쇼핑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아울렛은 본래 재고상품이나 B급 상품을 생산자가 저렴하게 판매하는 팩토리 아울렛(Factory Outlet)에서 출발했습니다. 인천에서도 가구공장이나 구두 공장에서 운영하는 아울렛 매장을 만날 수 있지요. 그러나 최근 10년간 사람들에게 익숙한 아울렛은 이른바 ‘프리미엄 아울렛’이 아닐까요. 미국의 아울렛 기업이 한국의 유통자본과 합작하여 시작한 프리미엄 아울렛은 10년 사이에 대도시 근교의 필수적인 유통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도시 근교에 고속도로로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넓게 자리 잡은 아웃렛이 주말마다 방문자로 가득 차는 것은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프리미엄 아울렛은 넓은 땅이 필요하기도 하고, 이에 따른 개발 비용을 절감해야 하기에 대체로 도시 내 보다는 교외에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고속도로와 인접해서 쉽게 오고 갈 수 있게 했지요. 이런 방식 으로 입지가 정해진 초기 프리미엄 아울렛이 여주, 이천, 파주 등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2016년 송도에 ㅎ 프리미엄 아울렛이 문을 열었을 때, 약간의 신기함과 어색함이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로 한 시간 남짓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도시 한 가운데에 생긴 것입니다.
도시 한가운데의 아울렛은 간혹 찾아가던 쇼핑의 공간인 아울렛을 일상의 구매공간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교외에 위치한 아웃렛에 들릴 때는 주말 하루를 온전히 빼내야 했습니다. 오전부터 쇼핑하면 점심을 먹고 오후에 돌아오는 공간이었죠. 그러나 도시의 아울렛은 퇴근할 때 들를 수 있고, 어제 가면, 오늘 또 가는 데 어려움이 없는 접근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형마트를 찾는 정도의 수고로 아웃렛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웃렛은 매장 구성에서 교외 아웃렛과 약간의 차이를 둡니다. 매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 지하 1층에는 다른 아울렛에 비해서 규모가 큰 식당과 식품관을 두는 것입니다. 이곳에 인기 있는 식당과 식품 매장을 둠으로써, 쇼핑 목적으로 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저 음료나 빵을 사기 위해 이곳에 오도록 유인하는 것입니다. 기존 아울렛의 키 테넌트(Key Tenant: 모객을 위한 핵심 점포)는 수입명품 매장으로 1층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ㅎ 프리미엄 아울렛은 쇼핑 편의시설 정도의 위상이었던 식당을 키 테넌트 수준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아울렛이 이벤트적 공간에서 일상적 공간으로 변형된 것입니다.
이러한 공간의 변형은 2017년 ‘ㅌ 스트리트’라고 하는 쇼핑몰이 ㅎ 아웃렛 옆에 나란히 문을 열면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도시의 대형 쇼핑몰은 하나의 수직적인 대형건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만, 최근의 경향은 이것을 옆으로 길게 늘여 일종의 길과 같은 형태로 만듭니다. 이미 송도에 만들어진 커낼워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형태의 쇼핑몰은 쇼핑몰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더 많은 개방감을 느끼도록 만듭니다. 쇼핑몰 안을 걷는 사람들은 이 공간에 대해 특정 시설을 이용한다기보다, 도시 일부분처럼 받아들입니다.
또한 이 쇼핑몰은 최근의 복합쇼핑몰의 흐름에 맞게 쇼핑 이외의 활동에 대한 공간 배분이 무척 많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식당의 비중이 높고 모객시설로써 영화관을 두었으며 옥상의 스포츠센터에서 풋살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복합쇼핑몰은 이러한 구성을 통해서 판매시설을 넘어서 접근성 좋은 레저 공간으로 위상을 확대합니다. 쇼핑몰에서 쇼핑과 여가를 동시에 향유하는, 이른바 ‘몰링’을 즐기는 소비자를 뜻하는 ‘몰고어(mall-goer)’라는 개념이 등장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레저와 쇼핑을 결합한 ‘레저핑’, 쇼핑몰과 바캉스를 결합한 ‘몰캉스’라는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ㅌ 쇼핑몰은 스스로 ‘걷고 싶은 거리’로 규정하고, 하남과 고양에 문을 연 ㅅ 쇼핑몰은 자신의 정체성을 ‘테마파크’라고 말합니다. 최근 쇼핑몰은 도시 사람들의 하루 여가의 모든 부분을 거의 충족시켜 줄 수 있도록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쇼핑몰의 운영 전략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도시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거대 아울렛과 쇼핑몰에서 단순히 편리함의 장점만을 만끽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아울렛과 쇼핑몰이 만드는 경험의 규격화의 측면입니다. 우리나라의 거대 유통 자본 세 곳에서 개발하는 무수한 아울렛은 지역적 맥락을 일부 고려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동일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매장의 종류도 거의 같고 식당의 구성도 유사합니다. 과거부터 이러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특히 프랜차이즈 일색의 구성이 규격화를 초래한다고 비판받았지요. 그래서 최근에는 다양한 팝업스토어를 기획하고, 각 지역의 유명 음식점과 제휴하여 입점하도록 합니다. 이런 방식이 보편화하면서 프랜차이즈의 규격화는 완화되었지만, 지역적 맥락은 더욱 빠르게 사라지며 쇼핑몰의 특성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ㅁ 빙수’는 압구정의 명물이었지만 이제는 ㅎ 백화점의 판매시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ㅇ빵’은 군산의 명물이었지만 역시 ㄹ백화점의 여러 식품관 메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공간적 제약을 넘어서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을 나누어 준다는 평등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의 규격화, 특히 유통자본에 의한 규격화는 도시민들의 삶의 경험을 통제합니다. SNS 마케팅의 범람으로 여러 지역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들이 매일같이 등장하는 오늘날, 대형 유통자본과의 제휴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인증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젊은 힙스터들의 유행이 유통자본의 검증을 거쳐 대중들에게 취향으로 쥐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험의 규격화는 우리 도시 구석구석의 새로운 창조성을 무너트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웃의 관심을 통해서 검증되며 자라나야 하는 지역의 작은 시도들은 대개 이 인증서를 받지 못하고 소멸하게 됩니다.
또 하나의 우려는 이러한 스트리트 형태의 쇼핑몰이 도시의 가로를 대체하는 일종의 ‘유사가로’를 형성하는 데 있습니다. ㅌ 쇼핑몰의 중앙 통로에는 스스로 ‘송도 가로수길’이라는 키치적 명칭이 붙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장벽과 같은 밋밋한 건물의 뒷면과 지하주차장 출입구를 마주치는 도시의 가로보다는 지속해서 변화하는 풍경을 따라 이 길을 걸을 것입니다. 걷는 동안 얻는 시각과 청각의 경험, 공통의 기억과 체험은 쇼핑몰 내부, 블록의 안쪽으로 수렴합니다. 이것은 쇼핑몰 운영의 관점에서는 대단히 성공적일 수 있으나, 도시 전체의 측면에서는 구분 짓기와 경계선 만들기에 가깝습니다. 건물이 길과 접하고 도시와 만나는 면을 스스로 차단하고 뒤로 돌아앉음으로써 가로 전체를 걸을 이유가 없는, 그저 기능적으로 자동차만 지나가는 길로 격하시킨 것입니다.
일본의 롯폰기 힐스 등 초거대 쇼핑몰은 도쿄에서 손꼽는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고, 재난 대비 방재 교육 뿐 아니라 지역축제, 마치즈쿠리(마을만들기) 참여와 같은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쇼핑몰이 도시 공간과 도시 사람들에서 분절된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 판매시설의 본질이지만, 도시공간의 한 부분으로서 공공성을 함께 만들어 가기를 기대해봅니다.
글,사진 제공/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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