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택과 소울소스와 김율희의 조합
‘탁월한 자유’란 바로 이런 것
대한통운 창고를 개조한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 들어서서,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음악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을 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다니” 그들의 음악은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자유로움이 있었다.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
그것은 아마, 아주 편해 보여서 잠옷으로 활용하기에도 좋을 것 같은 티셔츠와 체크 무늬 반바지를 입고 베이스를 연주하며, 목에 수건을 한 장 두르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센터의 뮤지션들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봉긋한 형태의 네모나게 솟은 모자를 쓰고 수염 정돈이 덜 된 듯한 모습으로 나타나 색소폰을 연주하는 뮤지션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북을 두드리며, 키보드를 연주하며, 기타를 어깨에 메고 리듬을 타고, 페달과 씨름하며 드럼을 연주하는 뮤지션들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그 모습 그 자체가 한편의 자유였다. 그리고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더욱 자유로웠다.
리듬을 타며 한껏 취해 연주하고 노래하던 음악을 ‘레게’라고 한다. 그들을 앞에 두고 그들과 한 장소를 공유하며 덩달아 자유롭지 않을 선택권이란 우린에겐 없었다. ‘노선택과 소울소스’ 음악의 한가운데에서 이들과 함께하고 있자면, 우리는 아마 이미 환상에 젖을 것이고 그 어떤 현실적인 선택도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함께 즐기는 이로 하여금, 지금 음악을 즐기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전에 가지고 있던 현실의 시름이 당분간 정지하는 힘을 가졌다. 더군다나 이들의 음악에는 소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감성, 소울을 충만하게 하는 요소(소스)를 아주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음악.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그들의 이름에서 이미 그들의 정체성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
레게이든지 힙합이든지 음악의 장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 그들의 음악 속에 있자면, 그것은 그저 신나는 춤사위를 부르는 흥겨운 리듬을 가진 음악으로 당시의 시공간을 점령하는 소리다. 그들의 음악 속에 있는 동안 아주 흥겨웠고 제아무리 박스권 안에서만 흔들어 대는 몸치라고 해도 리듬에 몸을 태우지 않을 방도가 없다. 이렇게 자유롭고 흥겨워질 방법이 있었다니. 꽉 막힌 일정 속에서 지냈던 한주가 그림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왜 그리도 많은 것을 걱정하고 숱한 우려의 시간을 보냈던가? 실은 모든 시름에서 벗어나 이렇게 온몸으로 자유를 느끼고 흥겨울 수 있는 것을.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일 것이고,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뮤지션이다.
그렇게 자유를 느끼고 있던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노선택이 ‘판소리의 잔 다르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는 소리꾼 김율희가 합류했다. 중간중간 그녀의 멘트는 그녀의 평소의 성격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아, 이 사람과 있다면 그저 대화만이라도 즐겁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판소리도 이리 즐겁다는 것을 익히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는 주말 TV 프로그램 ‘전설의 명곡’에서 힙합을 하는 팝핀 현준과 판소리를 하는 박애리의 합동 공연을 보고 느꼈던 신선함에 비해서 깊은 밀도를 선사한 공연은 놀라움을 느끼게 하였다. 팝핀 현준과 박애리의 공연이 생각지 못했던 힙합과 판소리의 조합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넓은 무대를 둘만의 공간으로 꽉 채움으로써 사람들을 몰입하게 했던 공연이었다면, ‘노선택과 소울소스’와 김율희의 콜라보는 신선한 조합에서 더 나아가 레게만으로는 미처 몰랐던 흥겨움과 기쁨을 느끼게 했다. 한국의 판소리와 레게가 이토록 잘 어울리며 더욱 깊은 흥겨움을 연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이들과 함께하기 전에 내가 감히 생각할 수 있었던가? 이들의 조합은 기존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
삶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렇게 기존의 것들이 융합되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느낌을 선사하고, 그것을 다시 온몸으로 받아내어 체화하는 데 있지 않을까? 그러한 순간의 깨달음은 늘 깊은 일상의 환희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또한 동방의 변방에 위치한 우리 문화가 이렇게 흥겨운 방식으로 전해질 수 있다면 민족 문화의 발전 가능성에 손뼉치며 환영할 일일 것이다. ‘노선택과 소울 소스’, 그리고 김율희의 콜라보공연은 인천아트플랫폼 콜라보스테이지의 첫 번째 무대이다. 앞으로의 콜라보 무대들에서는 어떤 신선함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글, 사진 김경옥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