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화살을 마주하기. – 제 12회 인천여성영화제 개막작 ‘불온한 당신’

‘2016년 5월 17일 새벽 1시, 나는 친구와 함께 집 앞 놀이터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고, 우연히 살아남았다.’

지난 5월, 강남역 근처의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다음날 SNS는 온통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고 말하는 해시태그로 가득했으며, 강남역 10번 출구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포스트잇을 붙이며 피해자를 추모하는 물결이 일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살해당한 희생자, 그가 살해당하기 전까지의 일상은 여느 평범한 20대 여성의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많은 여성들은 일상 깊숙한 곳까지 다가와 생명을 위협하는 혐오에 대해 분노했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표현을 통해 꼬집었다. 지금껏 혐오 범죄를 마주하면서도 그저 조심하자며 입을 굳게 다물었던 여성들이 점점 더 뾰족한 날을 세우는 여성혐오에 공감하며 연대를 통해 맞서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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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5일(금)부터 17일(일)까지 개최된 제 12회 인천여성영화제는 이제 막 혐오에 맞서 입을 열고 떠들기 시작한 여성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탠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문구를 캐치프레이즈로 선정했다. 사흘간 진행된 인천여성영화제에서는 12회차에 걸쳐 장, 단편 총 21개의 작품이 상영되었으며, 12회차 중 8회의 GV(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관객들이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나눌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올해 인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불온한 당신>은 빠르게 매진되며 큰 관심을 모았다. <불온한 당신>은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하여 쏟아지는 혐오의 시선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 이영 감독이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듣는 당사자의 시선에서 혐오에 맞서는 과정을 조명한 영화이다. 감독은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사회의 갈등을 유발하는 종북 세력으로 불리는 모습을 지적하며 ‘과연 불온한 사람은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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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70대의 선배 레즈비언인 바지씨 이묵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바지씨란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이 흔하지 않았던 과거, 레즈비언 사이에서 남성적인 사람을 일컫던 말로 요즘의 부치(butch)와 같은 단어이다. 이묵은 ‘여자깡패’라고 불리며 한 자리에 모일 수조차 없던 여성 동성애자들의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는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하는 혐오세력들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혐오의 양상이 집단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번져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카메라는 일본으로 넘어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의 모습을 비춘다. 논과 텐은 대지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를 잃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가족이 아닌 친구는 실종신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잃고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껴 커밍아웃을 결심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커밍아웃이 타인의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계를 알리고 목숨을 지키기 위한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부당한 대우도 감내하겠다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생존권까지도 위협당하는 사회적 약자의 극단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과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조항을 사수하려는 학생들의 모습,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그리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서울시민인권헌장의 선포가 거부당한 데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접점이 없을 것만 같던 이들은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불온한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한 데 묶인다. 영화는 계속해서 사람답게 살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과 그들을 불온한 세력이라고 부르며 혐오하는 이들의 모습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혐오세력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가장해 사회 혼란을 부추기지 말라고 주장하다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이유로 들어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기도 한다. ’애미 애비도 없느냐‘, ’나라를 말아먹을 놈들이다‘ 등 논리는 없고 혐오와 폭력으로 점철된 말과 삿대질을 퍼붓기도 한다. 이처럼 모순적이고도 비이성적인 혐오세력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소와 비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웃음을 터뜨리던 관객들은 이내 혐오의 화살을 직접적으로 맞는 소수자들의 입장에 이입하며, 함께 분노하거나 울분을 터뜨리기도 한다. 신문 기사, 뉴스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소수자들의 현실을 접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매체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 발짝 떨어진 입장에서 조명하기 때문에 그들을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대상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 <불온한 당신>은 관객들로 하여금 혐오의 대상인 당사자의 위치에 서서 날아오는 혐오의 화살들을 마주보며 그 폭력의 크기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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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혐오세력의 북소리와 함께 끝이 난다. 크게 울리는 북소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공기와 더 이상 그를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경종이기도 하다. 노동자, 학생, 성소수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만을 향했던 혐오의 화살은 이제 어느 곳을 향할지 예측할 수 없다. 감독은 혐오에 대해 침묵으로 동조할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혐오를 향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것을 제안한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 그러니까 한마디로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불온한 사람’이라 명한다. 그러나 점점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며 날을 세우는 혐오의 화살 앞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공지영은 그녀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혼자서 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사실은 함께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혐오의 화살에 맞서기 시작한 이들이여. 겁내지 말자. 작은 목소리는 모여서 큰 울림을 일으킬 것이며 연대를 통해 단단해진 방패는 혐오의 화살을 막아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글 / 인천문화통신 시민기자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