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문학사를 대표하는 초호화판 시집 『춘원시가집』
한국 최초의 창작 장편소설의 작가 춘원 이광수는 흔히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흙』과 『사랑』, 『원효대사』 등 대표작 대부분이 소설이지만, 춘원의 문필활동은 소설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시인이자 수필가였으며, 비평가·평론가·번역가이면서 한국 최초의 근대 희곡으로 평가되는 「규한」의 저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하면 이광수는 우리 근대문단의 ‘올라운드 플레이어(all round player)’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문학관 소장자료는 1940년 2월 박문서관에서 발행된 춘원시가집이다. 문학관이 소장한 방대한 희귀 근대문학 컬렉션 중에서도 특히 손꼽을 만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작가의 문단 생활 30년 기념으로 출판된 이 시집은, 장정이나 종이 재질, 케이스 등 ‘초호화판’이다. 또한 딱 500부만 찍은 한정판이며, 책 표지 안쪽에는 작가의 친필 서명과 작가 사진 원본이 붙어 있다. ‘호화판 오백부 한정’임을 명기한 판권면에는 이 책이 몇 번째인지가 붉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는데,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이 책은 ‘限定 五百部之 第 參○七 號’, 즉 307번째 책이다. 표지는 하드커버인데, 당시의 두꺼운 종이로 된 일반적 하드커버가 아닌 고급 천으로 감싼 ‘클로스 하드커버’이다. 또한 속지도 파란색인데 촉감이나 강도, 탄성 등 약 80년 전의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급이다. 이 책만을 위해 도쿄까지 가서 용지를 구해왔다고 하는데, 출판사에서도 각별히 신경 썼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중일전쟁과 그로 인한 용지난으로 인해 조선·동아가 폐간되었던 해에 이 책이 간행되었음을 생각하면, 이 책의 발행과 존재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책 앞쪽에 있는 작가의 친필 서명은 멋들어진 초서로 되어 있다. 탈초를 해보면 ‘朝令暮令佛’인데, ‘아침에도 저녁에도 오로지 부처님’이란 뜻이다. 일제 말기 불교-법화경에 심취해 있던 작가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298쪽의 이 시집에는 세 부에 걸쳐 총 149수의 시가 실려 있다. 1~2부 89편은 시조이고 3부 60편은 자유시이다. 이 중 두 편이 번역이다. 1부는 1937년 12월부터 8개월간 입원했을 때 그의 문하생 박정호가 받아쓴 시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1부의 서(序)는 박정호가 썼다. 작가는 이 책의 출간을 위해 애써준 노성석과 최영주, 박정호 3인을 특별히 기리고 있다. 노성석은 책이 발행된 박문서관의 2대 사장이며, 최영주는(본명 최신복)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전문 편집자로 수필잡지 『박문』의 편집인과 발행인을 지낸 인물이다.
책 맨 앞 ‘축원(祝願)’이란 제목의 일제 통치와 천황을 미화한 글은 이 시집의 뚜렷한 한계를 보여주지만, 책의 장정과 재질 등 여러 외적 형태는 당시 문단의 최고 권위를 가졌던 춘원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로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학예 연구사 함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