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사투리의 역습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의됩니다. 사투리는 ‘표준어가 아닌 말’로 명명되고요. 조선 시대에는 서울말과 지방어 간에 등급이 없었습니다. 이덕무 같은 학자도 지역에 내려가면 현지 언어를 배우는 게 자연스러웠죠. 최근 <방언의 발견>을 펴낸 정승철 교수는 표준어 개념이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주의의 상징물이라고 지적합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울말에 표준어 자격이 주어졌다는 겁니다.

‘서울에서 쓰는 말’이 공식적으로 한국의 표준어가 된 것은 1912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이 나온 이후부터입니다. 기본 원칙 1항에 ‘현대 경성어(京城語)를 표준으로 삼는다’고 명시했습니다. 이 철자법은 조선총독부가 만들었고요. “세계 각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표준어를 통한 언어 통일을 추구했어요. 총독부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였어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정 교수는 설명합니다. 일제와 대척점에 있던 조선어학회는 1933년 ‘표준어 사정위원회’를 발족합니다. 총독부는 효율적 통치를, 조선 지식인들은 민족의 역량을 높일 목적으로 표준어 확립을 위해 애쓴 거죠.

‘표준어와 사투리의 치열한 대결’은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지만 정 교수는 부작용이 컸다고 주장합니다. 표준어의 그늘에 가린 사투리는 푸대접을 받으며 척결의 대상이 됐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부 지식인으로부터 ‘야비하고 야만스럽다’는 지탄을 받았던 사투리는 광복 이후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이 됩니다. “서울에 유학하던 학생이 사투리를 쓴다고 교사로부터 야단을 맞거나 구타를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입학이나 면접을 앞두고 사투리 교정을 위해 일부러 학원에 다니는 사람도 생겨났지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것 같던 사투리는 TV·라디오 드라마·영화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39호 [큐레이션 콕콕]은 사투리가 상품이 되고 브랜드가 되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봅니다.

없어서 못 파는 달력이 있습니다. 광주 1913송정역시장의 ‘역서사소’에서 판매하는 사투리 달력은 ‘포도시 일월’로 시작해 ‘기언치 유월’을 지나 ‘욕봤소 십이월’로 나아갑니다. 벽걸이, 탁상형 달력을 포함해 한해 3000부 이상 판매되는 히트작이라고 하네요. 청년들이 모여 시각디자인을 활용한 팬시류 개발을 고민하던 중 “광주, 전라도 문화를 (상품에) 녹여보는 게 어떨까?” 아이디어를 낸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광주, 전라도에 대해 공부하고 관련 사례를 찾아봤어요. 경상도나 충청도는 사투리를 활용한 제품이 많은 데 비해 전라도 말은 너무 촌스럽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로만 소비되고 있더라고요. 사실 보면 저나 직원들도 20~30대인데 전라도 말을 쓰거든요. 우리 제품을 통해 경상도 “오빠야~”처럼 전라도 말에도 귀엽고 예쁜 말이 많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과연 팔릴까? 걱정했던 사투리 달력은 3년 연속 출시 중이고, 벽걸이 달력은 없어서 못 팔 지경입니다.

고백엽서도 있습니다. “니랑 있응께 시간이 요로코롬 폴쎄 가부럿네”, “써글놈은 인자 잊아블고 멋진놈 맹글자”, “니만 생각하믄 내맴이 겁나 거시기해” 등 맛깔스러운 전라도 사투리가 적혀 있습니다. ‘기여 아니여’, ‘여간 낫낫허요’ 등이 적힌 스티커도 재미있습니다. 지난 2017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언어나 문화를 브랜드화한 사례로 참여하기도 했다네요.

역서사소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세상을 바꾸는 사투리’입니다. 지역의 예쁜 말을 알림으로써 조금이나마 지역감정을 완화하고, 서로의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역서사소’ 매장을 운영하는 디자인 크리에이티브그룹 바비샤인의 김효미 대표는 사투리가 아닌 ‘전라도 말’이라고 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일본은 도쿄, 오키나와 말이 다 다르지만, 굳이 사투리라고 하지 않아요. 지역 말이라고 하지. 우리나라만 표준어, 사투리를 구분하는데 이 자체가 문제라고 느껴요.” “왜 우리 지역 말은 없냐”고 하는 분들이 있어서 경상도, 제주도 말 제품도 만들고 있다고 하네요.

전라도닷컴이 2011년에 시작한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는 전라도 말이 품은 매력과 특색을 발산하는 장입니다. 동네 이웃, 시골 할머니 등이 전라도 말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았죠. 전라도닷컴 황풍년 편집장은 “늘 쓰던 말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시간”이라며 “전라도 말과 언어에 담긴 고유한 문화와 정서를 지키고 보존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하는 자리”임을 강조합니다.

황 편집장이 꼽은 전라도 말의 매력은 정스러움과 깊이 있고 풍부한 표현입니다. “어머니들이 ‘놀짱하다’ 이런 말을 써요. 노랗다, 샛노랗다, 노리끼리하다, 노르스름하다 여러 말 중 보리나 나락이 익어갈 때의 자연의 색감을 포착해낸 말이죠. ‘귄있다’는 말은 외모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까지도 칭찬하는, 그 말을 아는 사람들끼리는 최고의 찬사고요.” 표준과 전국화가 최우선이었던 시대에서 “가장 전라도다운 것”이 지역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매년 5월 강릉에서 열리는 단오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됐을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은데요, 행사 때면 강릉 사투리 경연대회가 함께 펼쳐집니다. 벌써 24년째 이어져 오고 있죠.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만든 사단법인 강릉사투리보존회도 있습니다. 강릉 지역 사투리의 전승과 발전을 위한 교육, 강릉 사투리 홍보 및 캠페인, 사투리 시화전, 수공예품 제작, 강릉 사투리 소식지 ‘제일강릉이래요’ 제작 및 배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투리를 활용한 이모티콘도 있습니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이모티콘 ‘강릉사투리 고양이’는 지난달 23일 출시돼 7일 만에 전체 이모티콘 가운데 인기 순위 79위를 기록했습니다. ‘반갑소야’, ‘마이 좋아한다니’, ‘여르 보민 웃아(여기를 보면서 웃어)’, ‘어머야라.뭐이나(어머나. 뭐니)’, ‘진짜래요?’ 등의 강릉 사투리가 귀여운 고양이 그림과 함께 등장합니다.

사투리는 지역 주민들이 즐겨 쓰는 생활 언어입니다. 표준어는 옳고 사투리는 그르다는 잣대가 아닌 사투리가 한국어를 풍요롭게 한다는 인식 확산이 필요합니다.

지난 2010년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심각하게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로 진단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지구상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언어를 찾아 다섯 단계로 분류하는데요, 1단계 취약한 언어, 2단계 분명히 위기에 처한 언어, 3단계 심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 4단계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 5단계 소멸한 언어가 그것입니다. 제주어는 이 중 4단계에 해당합니다. 유네스코의 평가는 제주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발전적인 언어 정책 실행을 독려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를 보존하자는 취지의 제주어 살리기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진행됩니다. 도서관에 제주어책을 무료 보급하고, 제주어로 어린이와 청소년 성우를 선발하기도 합니다. 제주교육박물관은 ‘소멸위기 제주어 상설전시관’도 개관했네요. 제주어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다섯 편은 상영은 물론 초등학교 교재에도 실린다고 합니다.

<방언의 발견> 저자 정승철 교수는 “이제는 ‘방언 사용권’을 보장하고 사투리를 복권(復權)시켜야 할 때”라고 이야기합니다. “언어에 우월한 것과 미개한 것이 따로 있나요? 서울말도 여러 지방어의 하나일 뿐입니다. 근대화를 위해 국민을 통합하려는 표준어의 목표는 이미 달성됐습니다. 사투리를 쓴다고 해도 의사소통에 큰 방해가 없을 정도로 모두 서울말에 가까워졌지 않습니까?” 그는 방언의 소멸 속도를 늦추는 작업이 고향을 잃는 속도와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하는 속도를 줄여줄 거라고 덧붙이네요.

 

* 다음과 같은 기사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1. “서울말을 표준어 아닌 권장어로…사투리 쓸 자유를 허하라”
    연합뉴스, 2018.4.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경상도는 씩씩, 강원은 순박… 사투리는 감성언어”
    조선일보, 2018.4.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전라도를 팝니다]전라도로 만들고, 팔고, 즐긴다
    광주드림, 2018.4.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없어서 못 파는 ‘전라도말’ 달력, 대박 난 비결
    오마이뉴스, 2018.4.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카톡 강릉사투리 이모티콘 인기
    강원도민일보, 2018.3.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이삐고 귄있다” 전라도말의 품격을 보여드립니다
    오마이뉴스, 2018.4.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