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가 이미지를 만드는가, 이미지가 실재를 만드는가

실재와 이미지 사이 ‘이미지를 거닐다’ 

아이는 얕은 물이 놓인 곳을 좋아한다. 그 물가를 걸으면서 작은 돌멩이를 줍는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 돌멩이 던져요. 엄마 이거 물에 던져요.” 그렇게 아이와 함께 얕은 물에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 “착!” 돌멩이가 물의 표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돌멩이는 바닥으로 가라앉고, 돌멩이가 떨어진 물 표면에는 작은 원들이 생겨났다가 그 원의 크기가 커지면서 사라진다. 그리고 아이는 그 물을 보면서 좋아한다. 아이는 물속에 돌멩이를 던져보는 경험을 통해서 물에 무언가를 던지면 물속에서는 작은 원들이 생겨났다가 커지면서 사라지고, 그렇게 흔들리는 물이 잔잔해지고 나면 그 속에 자신의 모습, 자신의 이미지가 비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천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열리는 ‘이미지를 거닐다’ 전에서 만난 김창겸의 작품<Water Shadow in the Dish>는 다르다. 물웅덩이에 마땅히 존재해야 할 나의 이미지가 없다. 김창겸의 작품은 마치 물웅덩이로 착각하게끔 생겼지만, 그 영상에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없다. 이런 부조화를 바라보며 관람자는 당황하면서 신기하다. 물속에 돌멩이가 던져지고 그 돌멩이가 물에 빠지면서 소리도 들리지만, 그것은 나의 행동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실재의 나와 내가 바라보는 곳에 비쳐야 할 나의 이미지가 분리된 것이다.

나의 이미지가 있어야 할 곳에 그것이 없다면, 나의 모습은 세상 어느 곳에 비치는 것일까? 세상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나의 이미지가 부재하다고, 나의 실체 또한 없는 것은 아닐진대, 이미지가 없는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이미지는 세상과 내가 소통하는 모습일 것인데, 이미지가 없다면 나는 대체 무엇으로 나를 표현해야 하고,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마땅히 내가 보여야 할 곳에 내가 아닌 다른 이미지가 자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세상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방황할지도 모른다. 나의 본질은 이미지가 없이 존재할 수도 있는가? 과연 나의 실재는 나의 이미지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일까?

몇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사이에 우리는 고개를 돌려 또 다른 영상을 마주한다. 그곳에서는 실제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개하는 곳에 그림자만이 지나다닌다. 그림자의 움직임에 따라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닌다. 꽃을 피우게 하고 나비를 날아들게 하는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채 그의 그림자만 남은 것일까? 과연 저 그림자의 주인은 누구일까? 우리는 끝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의 그림자가 지나다니므로 세상이 환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림자 주인의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하게 된다. 이미지 속을 거니는 그림자는 그 스스로 꽃을 피우게 하고, 나비를 날게 한다. 우리는 마치 목소리와 향기로 무언가를 유추하듯이 그림자가 이끌어 내는 영상을 두고 그림자 주인의 모습을 상상한다. 우리가 어떠한 이미지를 두고 무언가를 판단하고자 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그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그 이미지가 반영하는 실재가 아닐까? 꽃을 피우게 하고 나비를 날게 하는 그림자를 앞에 두고 그 그림자 주인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재형의 <Bending Matrix>는 동물의 형상 위에 LED 인공조명을 이용하여 그 동물이 가진 무늬를 재현한다. 본디 말은 자연이고 말의 표면에 가진 무늬 또한 자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재형은 말의 형상 위에 인공적인 빛을 쏘아 무늬를 만듦으로써 인공적인 방법으로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디지털 이미지의 정교하게 구성된 Matrix를 자르고 구부린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매트릭스를 말의 형상 위에 비춤으로써 그 말이 가질 수 있는 갖가지의 무늬들을 표면에 쏘아낸다. 우리는 이재형의 <Bending Matrix>를 통해 새로운 무늬를 가진 말을 만난다. 말은 자연의 것이었지만, 이재형의 작품 속에서 인간이 새롭게 만들어낸 창조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인공조명의 구조가 달라짐에 따라 시시때때로 색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익숙한 동물인 말이 새로운 매개를 통해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마주하며 우리는 역설적이 되게도 우리에게 놓인 자연과 환경을 다시금 관찰하게 된다. “말의 무늬가 원래 어땠더라?” “이렇게 바뀔 수도 있는구나!” 하면서 말이다. 새로운 이미지가 거니는 말의 형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 주변의 익숙한 환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하고 돌아본다.

전시장소: (재)인천문화재단 트라이보울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 250(송도동 24-6)
전시기간: 2018. 4/25(수)- 6/29(금), 월 휴관
관람시간: 1PM – 5PM
휴관일: 4/29, 5/1, 공휴일
문의: 032-831-5066

 

글 사진/ 김경옥 인천문화통신3.0 기자
(수필가, 옥님살롱 http://expert4you.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