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시라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활동할 2018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뽑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연구와 창작활동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창작지원 프로그램과 발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2018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를 소개합니다.

 

모 시라(Mo SIRRA)는 이라크에서 태어난 네덜란드 국적의 작가로, 올해 3월부터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하여 작업해오고 있다. 작가는 오슬로 국립 미술 아카데미(Oslo National Academy of the Arts) 순수미술학과에서 석사, 바틀렛 런던 대학(The Bartlett 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건축 석사, 마스트리흐트 얀반 아이크 아카데미(Jan Van Eyck Academy)의 순수미술 연구 및 프로덕션 프로그램에서 석사, 바그다드 대학(University of Baghdad)의 순수미술학과에서 학사를 취득하였다. 그는 작업을 진행하는 곳과 주변의 건축물, 작업을 구성하는 사회․문화․정치적 맥락 등의 특정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때로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역사적이기도 한 작가의 작품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상 속에 놓여, 관객들이 그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의 반응을 연구한다. 작가는 이와 연관하여, 3개월 동안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 전시 <리-퍼블릭 더 폴리틱스(Re-public the Politics)>를 5월 8일부터 13일까지 창고갤러리에서 선보였다.

# 전시 리뷰
모 시라 작가는 3개월간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보고 전시 <리-퍼블릭 더 폴리틱스(Re-public the Politics)>를 5월 13일(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에서 진행하였다. 작가는 지난 작업과 마찬가지로 사회, 정치적 상황에서 예술이 어떠해야 하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설치, 조각,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작가는 매일매일 관람객의 반응과 주변 환경 등에 영감을 받아 발전시켜 나갔다. 개막일이었던 8일 화요일에는 의례적인 오프닝 행사 대신에 전시를 보러온 관람객들을 자신이 만든 (전시장 앞에 위치한) 구조물에 줄을 세워, 마치 세관을 통과하듯 한 명씩 입장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전시가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것은 작가만이 알 수 있었다. 

# Q&A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초창기 활동 때부터 결론을 단정 짓고 결과를 완성하기 위해 진행하는 창작을 거부해왔다. 대신 탐구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창작해오고 있다. 창작에 있어서 나만의 특별한 개념이 있는데, 그건 ‘리허설’이다. 나의 작업은 작업하는 장소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작업이 위치한 건축물, 작업을 구성하는 사회와 문화, 정치적 맥락 등이 있겠다. 그리고 나는 미술을 매개로 관람객의 반응을 살펴보며, 언어의 기술(메커니즘), 인식의 모호성 등을 연구한다. 뭐랄까 작업은 하나의 산만한 논쟁이 되고, 개입, 설치미술, 드로잉, 조각, 퍼포먼스, 영상 등 복합적으로 발현된다. 그러한 실험과 연구는 창작의 완성보단 ‘리허설에 리허설 하기’라는 말이 적합할 것 같다.

나는 장소 외에도 미술이라는 개념을 사회정치적인 문화의 맥락 안에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내가 생각하는 현대미술은 하나의 특정 문화, 하나의 역사와 장소에 속해있는 양상이 아니라, 문화의 이행이라고 본다. 나는 여러 곳에 정주하면서 작업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퍼포먼스 전략으로 창작 중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가변적이고 다변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생산의 자리를 만들어오고 있다. 따라서 나는 작가로서의 나의 역할이 어떠한 (확고한) 인식에 대한 변화를 끌어내는 조건과 장을 제공하는 발기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Q. 대표적인 작업 소개
A. 그간 시각미술, 건축, 인테리어, 패션, 섬유, 그래픽 디자인, 큐레이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와 행동실천을 통해 관점을 만들어왔다. 다양한 범주의 미술작품과 디자인 작품을 제작했고, 다수의 전시, 레지던시 프로그램, 워크숍을 기획하고 참여해왔다. 이 과정들은 나의 연구 담론을 확장하고 단단히 만든다고 본다. 대표적인 작업을 언급하기보단, 나의 모든 활동은 연구를 심화시키기 위해 구축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연구를 현실 속에서 ‘리허설(실험)’하고, 과정에서 만들어진 과제들을 발견하고, 논쟁적 요소들을 조정하며, 나의 (위치, 사회문화적 환경, 자아가 위치한) 현재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 등
A. 나는 내러티브를 의심하고 불가능성에 도전한다. 이 기회에 한 소년이 마주한 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3살에 나무를 거꾸로 그린 한 소년이,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이 세상이 자신의 상상력을 거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한 마디로 ‘No room even in Rome’이라고 말하고 싶다. 프랑스 망통의 장 콕토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고, 그때 나는 ‘기준’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장 콕토(Jean Cocteau)는 문학과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고, 파리 아방가르드를 이끈 주역들과의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은 동시대 작가들(마티스, 피카소, 브라크 등)의 작품을 베낀 질 낮은 콜라주로 판단될 수 있었음에도 좋게 평가되었다. 장 콕토를 둘러 쌓은 환경은 그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상실하게 한 것 같다. 또한. 형편없이 디자인된 미술관은 더는 지식 기관이 아니라, (미술과 문화의 핵심을 앗아가는)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념품 상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는 광고를 생산하고, 전체주의 국가는 동화와 종교적 권위를 생산한다. 장소의 지정학적 조건과 상관없이, 작가가 마주하며 도전해야 할 주요 쟁점은 후원자의 취향에 맞추거나 정권의 프로파간다를 전파하는 것, 기업의 정책을 광고하는 것, 미술기관에 관한 규정하에 일하는 것 등이 있다. 이것들을 수행하는 것은 주류에 편입되거나 극단주의자가 됨을 뜻한다.
‘나는 이라크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이며,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이며, 나의 시적 접근이나 시 그 자체는 나의 현재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다. 나는 다른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_시인 사르고 불러서(Sargon Boulus)의 “여덟 번째 그림(Eighth picture)”

이 터널의 끝에는 빛이 없지만, 바닥과 천장이 가느다란 검은 선으로 만났다. 그는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일련의 사물을 흔적으로 남겼다. 그 사물들은 그의 몸으로부터 그의 옷가지와 함께 떨어졌다. 나는 그렇게 기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긴다. 

Q.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A. 나는 20년 넘게 글을 쓰고 강연을 해왔다. 다수의 강연은 음악의 작곡기법을 비유한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예시하는 방법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며, 이를 통해 청자가 단순히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떠한 특정 활동에서 관습의 한계를 깨트려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나의 포트폴리오를 본 사람이라면, 내가 1인칭과 3인칭을 혼재하여 사용함을 알 수 있을 것이며, 꽤 혼란스러울 것이다. 포트폴리오를 보는 이는 1인칭인 나로 볼 수도 있고, 3인칭인 어떤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여러분이 수년간 뱉은 말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이는 내가 수년간 뱉은 유일한 말이다.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