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도시는 ‘좋은 문화’의 도시
‘음악도시 인천’ 브랜딩 작업이 한창이다. 인천시가 ‘인천 음악’을 발굴 중이고, 부평은 ‘음악도시 부평’을 의제 설정하며 국비 사업까지 추진 중이다. 이는 인천에서, 혹은 인천사람들로부터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비롯됐기 때문이다. 실은 대중음악뿐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 민중가요 역시 인천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확산됐다.
얼마 전 만난 김홍탁 씨는 기자에게 ‘인천이 왜 음악도시일 수밖에 없는가’란 질문에 해답을 안겨주었다. 인천에서 낳고 자란 그가 기타를 처음 접한 때는 동산중학교 2년 때였다. 신포동에 살던 그는 친구 집 2층에 세들어 사는 한 미군의 기타소리에 반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동산고 2학년 때부터는 신포동의 한 미군클럽에서 연주를 했고, 그 소문이 서울에까지 퍼져 서울에서 음악인을 꿈꾸던 가수 윤향기와 같은 동년배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그룹사운드인 ‘키보이스’ 였다. 이후 그는 신중현의 대척점에 서서 우리나라 로큰롤음악을 개척했다. 몇 년 전 만난 가수 송창식 씨도 마찬가지였다. 신흥동에 살던 그는 신포동 거리를 자주 오갔고, 미군클럽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들으며 음악적 감수성을 키웠다. 그런 인천에서의 성장은 훗날 그를 ‘세시봉’의 리더로 만들었다. 송창식은 이후 솔로로 독립하면서 팝송에 우리 전통음악을 접목한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을 하게 된 이유에 ‘인천’이라는 공간이 자양분처럼 깔려 있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어떨까. 인천시립교향악단 초대 지휘자인 김중석 선생은 우리나라 클래식의 효시가 ‘인천’이라고 말해줬다. 아펜젤러가 선교를 위해 인천에 들어오며 건반악기를 가져왔고, 교회음악을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인들이 성장했다는 것.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서울로 가서 활동하며 클래식음악을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그 역시 어린 시절 교회음악을 접하며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꿈을 키웠다.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백건우 씨도 청소년 시절에 인천에서 음악을 연주했을 정도로 인천은 클래식음악의 시발지였다. 민중가요 역시 70년대 후반 부평공단 등 인천의 공단을 중심으로 태동한 음악장르라 할 수 있다. 김민기 씨의 ‘상록수’, 박영근 시인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비롯해 많은 민중가요가 인천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민주화의 씨를 뿌렸다.
인천이 ‘세계 기록문화의 보고’라는 사실은 새로울 것도 없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200여 년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상정예문>이 인천에서 나왔고,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인 ‘팔만대장경’이 인천에서 판각됐다. 활자의 발명은 인류의 문명을 앞당기고 지식을 크게 확산시킨 ‘제 1의 정보혁명’이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인천에 들어서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음악’과 ‘기록문화유산’을 비롯해 유·무형의 역사·문화적 가치는 너무 많아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인천이 이처럼 문화적 가치로 출렁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천이 우리나라의 ‘인후’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과거 고려왕조가 수도로 천도했던 것이나, 조선의 개항지였을 만큼 인천은 요지였다. 해불양수. 인천은 한편 포용의 땅,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유독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인천을 삶의 터전으로 찾아온 것은 바다가 육지를 끌어안듯 안아주고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들은 그 어느 도시보다 개방적인 인천의 문화에 동화되며, 혹은 새로운 문화를 퍼뜨리며 ‘다양성의 문화’를 빚어냈고 그 과정에서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인천의 문화적 가치를 방치한 채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인천시가 현재 ‘정체성 찾기’ , ‘가치 재창조’ 사업을 추진 중이나 열정과 노력보다는 구호가 앞서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인천만의 가치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인천시민들이 맘껏 향유해 ‘좋은 도시에 살아서 행복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해선 ‘문화’를 우선해야 한다. ‘문화’의 가치를 중시할 때 그 문화의 향기로 인해 모든 분야에서 시민 삶의 질은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김진국 / 인천일보 문화체육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