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꾿빠이, 요코하마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한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뱅크아트는 전시기획과 임대뿐만 아니라 국제 레지던시, 아트스쿨, 미술전문 서점, 카페와 펍을 운영하며 기금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자생적인 수익 모델을 추구한다. 사진ⓒ노기훈

근대라는 SET

벽면에 각인된 뜻 모를 한자들, 기둥에서 떨어져 나간 각기 생김새가 다른 시멘트 파편, 페인트층이 벗겨져 바깥으로 드러난 색 바랜 안층, 어질러진 무늬가 한 곳에 이르러 표식을 형성한 바닥의 얼개. 뱅크아트의 벽면을 매만지면서 100여 년 전 일본 우편선 창고에 누군가 남긴 암호를 해독하겠다는 추리극이 시작된다. 과거에 남긴 흔적과 교감하는 일이야말로 근대가 심어놓은 낭만이 아닐까. 숨을 깊게 들이 마셔본다. 근대에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원혼으로 떠돌다가 공기를 통해 몸 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그들은 철부지 몽상가의 이성을 마취시킨다. 결박한 곳에 숨겨놓았던 자의식이 몸에서 빠져나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철철 넘쳐난다. 주워 담기에는 이미 홀로되었다는 해방감에 감성을 담당하는 수도꼭지가 박살이 났다. 시간의 축을 마음껏 왕래하는 타임 루프 영화 속 주인공이 감당해야 하는 선행 의식처럼, 그렇게 영혼이 빠져나간 몸을 다른 이에게 내어줘도 좋다는 식으로 의식은 한결 가벼워진다. 꽉 걸어 잠갔던 이성은 새롭게 맞닥뜨린 이국에서 처참하게 벗겨진다.

일본을 돌아다니며 근대의 모습을 회상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거라는 기대에 요코하마 곳곳을 꼼꼼히 바라본다. 길거리의 한복판을 다니며 주변을 어긋남 없이 두리번거린다.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의 이국적인 생김새에서 동인도 회사의 홀란트인을 발견하고, 도시를 감싼 염분 가득한 바닷바람에서 대항해 시대의 기운을 느낀다. 요코하마는 근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영화로 재현된 세트장 같다. 현대 문화의 최전선에 선 현대미술 작가라는 자격으로 입장했지만 때아닌 자취들 때문에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별스럽지도 않은 것에 골똘히 무한한 경지 속으로 빠져든다. 때때로 시차를 극복하지 못해 새벽인지 저녁인지 모를 정도로 착란을 일으키며 몸과 정신이 따로 노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집으로 돌아오면 무언지 모를 피로감에 사로잡혀 잠자리에 들 수가 없다. 밤낮이 바뀌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낮에 있어도 밤에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말을 상실했고, 혼잣말로 한국어를 내뱉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릴 적 집 나간 할아버지가 돌아와 장시간의 침묵을 이긴 후 헛기침으로 시동을 걸며 이야기해주는 겨울날의 쓰라린 추억담을 듣는 것처럼, 그저 잡히지 않는 뭔가를 떠올리고 다시 재빨리 주변을 살피고 혼자 피식 웃으면서 나만의 근대를 만들어 간다.

일본에게 근대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기억이다. 나가사키에 있는 군함도(端島)는 1974년 폐광 당시 현장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폐허로 남은 아파트에는 소녀의 체취가 감도는 바비인형과 당시 일본 내 여타의 지역에 비교해 풍족한 경제수준을 보여주는 가전제품이 여전히 남아있다. 군함도에서 하나뿐이었던 교실에는 40년 동안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걸상이 한쪽 다리를 잃고 비스듬하게 누워있다.

만약 한국이 군함도의 주인이라면 어땠을까라는 불온한 상상을 해본다. 일단 교실까지 오르는 긴 계단을 보기 좋게 공장식 나무판넬로 덧대어 무릎이 안 좋은 관광객들도 오르기 쉽도록 개조한다. 내부는 석탄 채굴 당시 풍속에 맞게 정형화된 동작으로 멈춘 미니어처를 투명 아크릴 상자에 넣고, 그걸 어린이들이 가까이 들여다보면 열 감지 센서가 반응하여 익히 듣던 성우의 높고 명쾌한 목소리로 광부의 구구절절한 신세 한탄이 또박또박 읊어지는 설비가 갖춰있다. 상상한 김에 하나 더 하자면, 출구에는 광부의 복식을 가져와 얼굴만 뚫어 놓은 입식 POP가 놓일 것인데, 불특정 다수가 지나간 좁은 구멍은 또 얼마나 불결한 개기름을 끈적하게 쌓아갈 것인가.

시간을 인위적으로 깎고 잘라 각색된 공간에는 정치만 있고 이야기가 없다. 단 돈 5000원도 안 되는 시장통 식당에 할아버지들이 공들여서 하는 이야기는 옆 테이블 앉은 젊은 사람을 겨냥한 듯 적잖이 흥분해서 말을 이어가지만, 눈앞에 그 형태는 보이지 않으므로 막연한 판타지의 영역으로만 인정된다. 보고 싶어 손을 이끌어 달라고 해도 남아 있질 않은데 무얼 보란 말인가? 어르신은 걸걸하게 가래를 끓으며 호통을 치지만 사정이 그러하니 손가락이 저절로 굽어 제 얼굴을 가리키는 격이다. 할아버지의 환상과 경험이 섞인 구술은 언제나 사실과는 괴리된 무용담으로 각색되고 늙은이의 과거 미화쯤으로 여겨진다.

기억의 가소성에 따라 보려고 하는 것만 남으며 진실은 결국 닿을 수 없는 먼 공간에서 막연하게 맴돈다. 왜냐하면 그들이 증언한 진술에 증거가 될 물리적인 배경이 남아 있지 않아, 내 생각은 원점에서 시작하여 오로지 판타지의 영역으로밖에 꾸며낼 수 없는 하이퍼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그들의 옛이야기 속에서 실마리를 간직한 공간적 배경이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넘어 눈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이 중첩되어 만날 때 이야기는 입체적으로 재조직된다. 여러 시공간이 하나의 장소에서 섞이면 전후 맥락을 살핀 다음 현시점에서 좌표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방향감각이 생긴다. 앞으로 가든 좌우로 흔들리든 플롯이 생긴다. 그렇지만 우리 사정은 이러하니 대한민국에서 근대가 뭔지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젊은이들은 할아버지가 이야기해주는 과거사에 무관심한 태도를 짓는다. 건축물의 죽음은 대의 민주주의를 잘못 실현한 관과 정치에 책임소재를 돌릴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에게 다가온 잔혹한 현대사에 맞설 수 없이 먹고 사느라 무감각하게 다져진 미의식에 그저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정도 자조에 끝나면 다행인데, 잘못된 미의식은 형식을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고 숨은 진실마저도 손쉽게 은폐해 버린다. 현재의 편의를 위해 에폭시를 뒤집어쓴 역사적 현장은 베수비오 화산 분출물을 뒤집어쓴 로마인을 보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그로테스크하다. 영양섭취와 유산소 운동을 피하고 성형수술만으로는 건강한 노후를 기대할 수 없다.

후지산에 닿은 태양

에노덴(江ノ電)은 가마쿠라의 핵심 교통수단이다. 쇼난 (湘南) 해안을 따라 달리는 구간은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 등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에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일본 사람들도 가마쿠라 역에 에노덴이 들어서면 “카와이”하고 사진부터 찍는다.  사진ⓒ노기훈

일본에서 한두 달이 흐르고, 낭만만이 유일한 무드였다던 근대의 표면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진기를 들고 도쿄 인근의 요코하마와 가마쿠라를 부단히도 산보했다. 동경에서 남쪽을 따라 요코하마와 가마쿠라로 이어지는 관동지방의 험난한 경로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운명을 거스르는 여정이었다.

에노시마(江の島)에 간 날이면 후지산 정상에 해를 걸쳐두고 백석(白石)과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여행했다는 인근의 이즈반도(伊豆半島)를 생각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한 여인을 사랑한 도시 엘리트의 순애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감정이입은 어려웠다. 하지만 치고가후치(稚児ヶ淵)에서 멀리 후지산을 바라보며 정상에 남아 있는 잔설이 해와 맞닿을 때는 『설국』 후미코의 붉은 볼을 연상케 하며 사진기법 중 하나인 다중노출을 보는 듯 탄식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 같은 곳을 지그시 바라보며 끌어안고 있는 일본 연인들이 실제로 그 주변에 있었다.

에노시마의 끝자락에 있는 치고가후치(稚児ヶ淵)에 가면 사가미만(相模湾) 너머로 후지산이 가까이 보인다. 관동대지진으로 융기한 지반 덕분에 바다에 인접한 곳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치고가후치는 수행승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동자승이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하고 뒤이어 수행승도 따라 죽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진ⓒ노기훈

밤이 되면 요코하마에서 도쿄 쪽으로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치밀하고 노출에 순응한 낮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는 밤이었다. 밤을 통과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듯했다. 큰 유흥가만 제외하면 일본의 밤은 유달리 침착했다. 정돈된 거리의 풍경은 일관된 가로등의 화이트밸런스에 맞춰 낮은 음으로 소리를 냈다. 셔터 소리가 정적을 깨며 혹 누군가 잠에서 깰까 불안해 무음으로 바꿔놓았다. 밤에 미명으로 밝히는 것들은 낮의 햇빛에 압도되어 보이지 않지만 밤이 되면 혼잣말을 하듯 작고 희미하게 주변을 밝혔다. 

새벽 3시가 되면 어김없이 24시간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일에는 대체로 나긋한 푸념같은 것들이 의미를 갖추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같이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주말에는 주정뱅이들의 끊임없는 술자리로 식어버린 라면 냄새와 홉 향 가득한 맥주가 은은하게 풍미를 더했다. 첫 차를 타고 돌아올때면 집 앞에 있는 소바 집 자판기 앞에 섰다. 눈을 감고도 자판기 버튼을 찾아 누를 수 있을 정도로 지겹게 먹은 가츠돈, 소바 세트를 뽑았다. 점원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카운터에 표를 내밀며 “아따다카이 소바”라고 몇 안 되는 일본어를 내뱉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날이 밝아와 있었다.

나카메구로(中目黒駅)는 봄이면 메구로가와를 중심으로 벚꽃이 만개한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골목마다 들어서 있다. 여유로운 일상이 매력적인 동네이다. 저녁이 되면 퇴근한 직장인들이 모여든다. 사진ⓒ노기훈

작업이 일단락된 후에 한동안 뱅크아트에 있는 작업실에 앉아서 도서관에 있는 책을 날리듯 살펴봤다. 나에게는 육성에 대한 갈증만큼이나 책을 넘기는 행위가 중요했다. 하지만 책에 적힌 한자는 매번 나로부터 단절되었다. 나에게 있어 한자는 한동안 짧게 공유되었고, 마치 꿈처럼 재빨리 소멸한 암호 같았다. 그들의 문자는 지나치게 무거운 기호였기에 나는 책 속의 이미지만을 여러번 보았다. 심심할 때면 건물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르는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그들만의 야합의 장소를 살펴보기도 했다. 혹시라도 비밀의 장소를 발견하면 내 나름대로 공간을 명명하며 귀퉁이에 작은 글씨를 새겨 넣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되었다는 착각으로 일본 생활은 어리석게 지나갔다. 타국에서 철저히 단절되고자 마음먹은 사람이 고독을 사용하는 방법은 이처럼 어리고 에고가 폭발할 지경에 이를 만큼 과민하게 만든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방만한 상태가 지속되면, 껍데기가 떨어져 나간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때 만나는 나는 어느 시기에도 속하지 않은 완전한 나이다. 나에게 남은 것은 한 묶음의 자전적 소설과 풍경으로 떨어져 나간 나의 허물이다. 이때 나에 대한 몰입이 가능해지고 나의 이야기가 보인다. 20대에 여유가 있었으면 자발적으로 유학을 가거나 이민을 가 자신을 대면해 볼 걸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업하는 사람에게 익숙한 환경을 떠나 세달 동안 이국에서 생활하는 것은 새로운 곳에서 작업 그 자체를 진척시키기보다는 나를 멀리서 바라보고 과거보다 더 깊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의미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사진에 대해 생각했지만 어두운 밤에도 필시 사진에 무언가 찍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달과 빛

뱅크아트 레지던시 인근에 있는 오오카(大岡)강 주변으로 하나미(花見) 시즌에만 한시적으로 포장마차가 허용된다. 벚꽃이 질 때면 포장마차도 철수한다. 사진ⓒ노기훈

레지던시 생활이 두 달이 지나면서 차차 익숙해졌던 11월 즈음에, 웰컴 파티에서 처음 날 본 이후로 ‘기훈 상의 행적이 묘연하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의중을 보인 뱅크아트 디렉터 이케다 상에게 그간 작업해 온 이미지를 펼쳤다. 그 이후로 2018년 1월까지 개인전을 위해 시계는 맞춰졌다.

개인전 <달과 빛>은 2018년 1월 26일에서 2월 4일까지 뱅크아트 1층 갤러리에서 열렸다. 사진ⓒ노기훈

 개인전이 마무리되었고 다시 조선총독부와 김영삼 정부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 식민지 시대에 서울이었던 경성의 도시 구조와 토대는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고 험난했던 50년의 협곡을 지나 그동안 돌보지 못한 상처는 비로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리기 시작한다. 조선총독부는 일제가 남긴 국권침탈의 상징적인 공간이기보다 지난 50년 동안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얼굴이었다. 조선총독부 폭파를 통해 문민정부가 원했던 것, 그건 아마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광복 후 50년의 역사에서 발견해 낼지도 모르는 미래 세대들에게 엄중히 당부하는 절연의 제스춰일까?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날 친구와 광화문 근처를 걸으며 짧은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온 감회를 이야기했다. 서울시의회 옆에 있던 근대 건축물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서로 아쉬워하며 결국 우리가 보는 풍경은 살아남은 것들의 종합병동과 같다고 합의했다.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미명 아래 지켜지는 저 건물들은 언제 끊길지 모르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버티고 있었다.

내친김에 종로까지 걸어갔다. 퇴근길에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건물을 배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 순간 서울 한복판에 거대하게 솟은 건물들을 보며, 시간이 지나면 철거될 것 같은 건물들을 짐작해 보았다. 20년 전처럼 건축물이 대역죄인이 되어 처형 당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시대가 바뀌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인이 되었고, 실용적인 것에 우리는 눈을 돌린다. 눈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느리면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 역사라는 거대 담론의 옳고 그름에 의해 건축물의 존재가 결정되는 세상은 끝이 나고, 이제는 계산기가 주관하는 숫자의 논리에 건축물의 생명이 좌우되는 세상이다.

건물을 부수는 현장에 피어오르는 먼지와 시멘트 덩어리의 환상적인 콜라보를 지켜보며 그 사라짐을 애석하게 바라보는 부재의 낭만은 인간사의 일정한 시기에만 일어난 과거의 양식, 양태, 관습으로 칭해야 하는 건가. 먼 미래에는 어떠한 이유로 건물이 세워지고 무너질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단순히 수치(羞恥)라는 유교적이고 낭만적인 이유로 조선총독부가 없어질 줄 누가 알았던가.

건물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 빈라덴의 주도하에 뉴욕 중심가에 있던 무역 센터는 단 두 대의 비행기가 관통하며 무너져 내렸다. 요코하마의 도시 재건의 이면에는 2차 대전시 연합군의 폭격과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건축물 붕괴가 큰 계기가 되었다. 해가 정상에 얹히는 후지산을 볼 수 있는 에노시마의 치고가후치(稚児ヶ淵) 역시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지반이 해수면 위로 상승하면서 나타났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일몰을 본다. 일본은 2020년에 개최하는 도쿄올림픽을 위해 도시의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다. 도시 곳곳에 평화를 상징하는 오륜기가 말끔히 포스터에 박혀 오색찬란하게 빛난다.

모던 보이와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사이에서

나는 도쿄 진보초(神保町)를 걷다가 이상(李箱)이 죽기 전에 살았던 2층 다락방을 상상해 보았다. 20세기 초에 지은 2층짜리 여인숙이 남아있는 거리에서 할 일 없이 다다미에서 뒹구는 이상을 떠올렸다. 그런데 통이 넓은 정장 바지에 포마드를 잔뜩 바른 장기리 머리를 한 20대 초반의 건축기사 이상이 조선총독부 2층 난간에서 각혈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조선총독부는 남아있지 않으므로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조선총독부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고 두 손가락으로 확대하여 검은 난간 속을 질주하는 저 무한한 육면각체의 비밀 속으로 잠입하는 것이 유일한 방편 일 뿐. 이상은 왜 앞날이 창창한 조선총독부 건축 기사직을 그만두고 끽다점이나 하면서 시원찮은 글이나 쓰려고 했을까.

건물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 나는 뱅크아트에 있(었)다. 3달동안 일본 우편선 주식회사 창고에 있으면서 유치한 지적 허영을 즐겼고 지금은 없어진 서울의 어느 건축물을 먼 이국의 감상과 연결 짓는 착각에 빠져들며 다중 노출이라는 착시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간 개념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그중에 쓸모 있는 것만 걸러서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 현실이라는 단면은 나에게 대한민국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간직한 채 살아가면서 이따금 들춰 볼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철거해야 했을까 보존해야 했을까? 김영삼 전대통령은 금융실명제로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는 쓰레기 종량제를 기필코 해야만 했던 시인이었는가? 건축물의 사라짐을 추앙하던 마조히스트였던가? 그 먼지 가득한 순간을 즐기는 미술가였던가? 우리에게 1990년대는 30년대 식민지보다 훨씬 리얼하게 현실을 가로막은 가짜들로 날갯짓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굳빠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파라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이상의 ‘날개’ 중 일부분

 

 글/사진 노기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