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있는 저녁> 한국근대문학관의 수요일은 특별하다

인천역에서 차이나타운을 지나 한가롭게 주변을 구경하고, 안쪽으로 들어오다 보면 인천 예술의 랜드마크 아트플랫폼이 나온다. 일자 통로를 두고 양옆에 줄지어 서 있는 크고 작은 건물들을 지나면 한국근대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무엇을 하는 곳일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홈페이지도 개설해있고, 입간판도 세워 있지만 왠지 모르게 낯선 공간. 하지만 낯설다는 느낌과는 살짝 무색하게 많은 사람이 오가며,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별한 수요일?

‘문학이 있는 저녁 – 한국 현대문학 명작 특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30분에 다양한 주제와 문학작품으로 여러 대학교의 강사들이 총 8번의 특강을 진행하게 된다. 수강료는 무료. 나는 예술대학을 다녔다. 그렇기 때문에 타 학과 학생들보다는 선택할 수 있는 교양과목 폭이 굉장히 좁은 편이었다. 게다가 신화나 문학, 역사수업을 수강하고 싶어도 자리가 금방 차거나 관련된 과목이 없을 때가 많았다. ‘현대문학 명작 특강’을 개강한다는 희소식에 바쁜 와중에도 발걸음을 한국근대문학관으로 향하였다. 3층 교육연구실로 도착하니 다과와 프린트물이 준비되어 있고, 제시간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자리가 꽉 차 있었다. 현대문학특강뿐만 아니라, 미술사, 근대문학, 세계문학 등 여러 특강이 기획되고 준비된다는 이야기에 괜히 마음이 설렌다.  

청춘의 전설을 만들다 – 김내성의 ‘청춘극장’

살짝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청춘극장’이라는 소설이 생소했다. 그러나 나보다 조금 연배가 높은 분들에게는 친숙한 작품인듯하다. 한양대 김현주 강사의 경쾌하고 밝은 인사로 특강이 시작됐다.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두 시간에 걸친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김내성 작가와 ‘청춘극장’에 대한 애정이 담긴 강사의 표정과 말투는 강의 몰입도를 한층 높여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책도 마치 맛있게 다 읽은 것처럼

강의는 <김내성, 그는 누구인가>,<’청춘극장’ 스토리 속으로>, <영화 ‘청춘극장’ 엿보다>, <청춘의 전설을 만들다.>로 크게 4개의 구성으로 진행된다. 미리 준비된 유인물은 수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강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먼저 김내성이라는 작가 소개가 시작된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피와 눈물을 흘렸던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문인들은 자취를 감추거나 친일작품을 남겼다. 김내성 작가도 살아남기 위해 친일문학 작품을 썼지만, 수치심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난리 통 속에서도 5권의 장편소설을 집필하고, 불티나게 팔렸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추리소설의 특징을 가진 연애소설 ‘청춘극장’은 그 시절 우리 청춘들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더불어 작가 본인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반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내에서는 많은 청춘들이 서로 얽혀서 누군가는 양심을 지키고, 누군가는 양심을 팔고, 누군가는 사랑을 얻고, 누군가는 사랑에 실패한다.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독립운동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내용이다. 청춘들의 사랑과 독립운동이라는 사회적 배경이 공존하는 내용을 보며, 고단했던 시절 사람들에게 ‘연애’라는 조미료가 얼마나 달콤했을지 상상했다. 청춘들의 로맨스가 이야기 대부분을 전개하고 있지만, 사랑이야기가 역사적 흐름을 부드럽게 이끌고 가는 윤활류 역할을 한다.

모든 베스트셀러류의 문학처럼 ‘청춘극장’ 역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대중들에게 한껏 사랑을 받고 완결된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영화로 개봉할 수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가 많아, 이를 영화에 모두 반영하려면 비용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흥행과 상관없이 3편의 영화로 제작된 ‘청춘극장’은 멋진 청춘스타들을 배출해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결말 부분이다. 해피엔딩이 아닌데도, 굉장히 밝고 경쾌한 ‘축배의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면서 막을 내린다. (소설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죽지만, 영화에서는 주요인물인 운옥이 죽는다) 영화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아무도 비극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힘든 것은 지나가고, 결국 새로운 것이 다시 시작된다. 영화 시나리오가 소설 줄거리와 조금은 다르나, 원작에서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요 메시지 만큼은 시각적, 청각적으로 잘 연출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청춘은 막을 내린다.

남녀 주인공이 생을 마감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삼각관계의 여인 운옥만이 살아남아, ‘독립운동가’로서, 해방 뒤엔 ‘청춘’으로서 남은 발걸음을 새기며 걸어간다. 강사님은 작가가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백영민과 그의 연인 오유경이 죽음을 맞는 결론을 이끌면서 과거에 행했던 부끄러운 자신의 행위(친일작품을 썼던 사실)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는 마음을 투영했다고 한다. 죄인은 있으나 악인은 없다처럼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 ‘그때의 상황이라면 너도 악한 마음을 먹을 수 있었겠지,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도 있지.’라는 측은한 마음이 든다. 이는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자, 본인에게도 건네고 싶은 말일 것이다. 또한, 초반에 ‘도라지’꽃 전설을 이야기하며 영민과 운옥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할 거라는 암시를 주지만, 예상과 다르게 두 주인공인 죽음으로써 반전의 묘미가 있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청춘은 운옥이 아닐까. 아프고 괴로웠던 시기를 견디며 내일로 향하는 청춘. 청춘극장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현재 우리 시대의 청춘과 그 시절의 청춘에게 요구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지금의 청춘들에게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지만, 한참 20대인 나에게 그때의 청춘들을 바라보는것은 그 시대의 삶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청춘 극장’ 강의는 막을 내렸지만, 매주 수요일 한국근대문학관에선 7번의 명강의가 남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귀가 즐거웠으면 하는 분들도, 심도 있는 인문 배경지식을 알고 싶다면 다음주 수요일에 6시 30분까지 근대문학관에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글·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이은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