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신방
아주 생소한 이름이어서 누구도 유신방(柳新芳)이 인천과 연관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여배우 유신방에 대해서는 1932년 1월에 발간된 잡지 『삼천리』의 기사가 해답을 던지고 있다. 그 기사는 2007년 2월에 발간된 『인천학연구』에도 인용이 되어 있는데, 유신방을 ‘영화 <사나이>에 출연한 오향선’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 밖에는 고일 선생의 『인천석금』에 오향선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한때 인천의 명기로 이름을 날렸던 오향선도 기악과 단가는 물론 바둑을 두고 바이올린도 켤 줄 알았으며, 사군자도 치고 글씨도 잘 썼었다.”는 내용이다.
『인천학연구』는 “유신방은 오향선(吳香仙)이란 이름을 쓰던 용동권번의 기생이었는데 미모와 재능이 뛰어나 나운규(羅雲奎)에 의해 캐스팅되었다.”고 쓰고 있다. 오향선이 술집에 놀러온 나운규를 만나 그의 연인이 되고, 영화 <사나이>에 출연함으로써 영화배우 유신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시기는 1927~8년 무렵으로 유신방의 나이 스물세 살이었다.
유신방이 출연한 작품은 모두 나운규의 영화로 1928년 <사나이>, 1929년 <벙어리 삼룡>, 1930년 <아리랑 후편> 총 세 편인데, <벙어리 삼룡>은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당시 영화계로부터 “영화배우로서 제일 얼굴과 체격이 좋았고 언뜻 보기에도 어딘지 깊숙이 끄는 데도 있”지만 나운규를 연애에 빠뜨려 방탕하게 했다는 이유로 “조선 영화계의 요부(妖婦)”라는 부정적인 평판을 받았다.
훗날 유신방은 개성권번에 들어가 흥행에 실패한 나운규의 영화 자금을 대었고, 그와 헤어져서는 불교에 귀의해 금강산에서 수도 생활을 했다. 광복 후까지 인천에서 식당 등을 경영했으며 1970년대까지 생존했었다고 하나 그 이후 행적은 불명하다. 배우로서 오래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인천 출신 여배우였음은 틀림없다.
김윤식/시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