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그룹 마감뉴스

소금, 꽃을 피우다-생성과 소멸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장소 : 인천광역시 옹진군 시도염전, 10월 13일~31일

설치그룹 ‘마감뉴스’는 1992년 결성되어 올해로 25년째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작가 단체이다. 기존의 상투적인 전시공간인 화이트큐브에서 벗어나 ‘자연, 인간, 예술’이라는 화두를 내세우며 광활한 자연환경과 직접 마주치는 생생한 경험을 예술로 표현하는 작업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매년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여 2박 3일간 그곳에 머물면서 낯선 공간이 제공하는 자연의 언어를 귀담아 듣고 자유로운 예술의 언어로 화답하는 ‘유목적인’ 태도의 작업방식은 올해도 역시 유효하다. 올해의 특별기획전은 인천의 작은 섬 중 하나인 시도에서 진행됐다. ‘마감뉴스’가 시도에 주목한 것은 이곳에 염전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소금을 생산하는 인천의 몇 안 되는 염전 중의 하나를 올해 프로젝트의 터전으로 삼은 것이다. 아마도 이런 장소적 특수성이 이번 ‘마감뉴스’의 프로젝트가 지닌 가장 두드러지는 독창성일 것이다.

이들이 시도에 들어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간은 불과 2박 3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짧은 만큼 응집력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한 사전조사는 꽤나 철저하게 이루어진 인상을 준다. 우선 인천의 역사에서 소금이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를 사전에 조사했다. 이들에 따르면 소금은 비류가 미추홀에 나라를 세우게 되는 배경이 되었으며 인천은 최초의 근대적 형태의 천일염 생산지이기도 하다. 한때 전국 소금 생산량의 절반을 인천에 담당했다고 하니 인천에 얼마나 많은 염전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는 익히 짐작되는 바이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인천에서 1차산업에 해당되는 염전의 수는 급격히 줄었고 중공업이 그 자리를 차지한 이후에 이제는 공항과 항만을 비롯한 첨단화된 3차산업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듯 소금은 인천의 역사적 기원을 이끌어낸 중요한 상징이자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이제는 빛바랜 영광을 뒤로 한 채 아직까지 생존한 한 줌의 염전만이 그 희미한 자취를 지켜오고 있는 실정이다. ‘마감뉴스’는 오늘날의 염전이 이른바 ‘친환경 산업’이라는 새로운 미명하에 겨우 잔존하고 있는 표면적 상황을 파고들어가 그 심층에 있는 역사적 가치를 길어 올린다. 이것이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소의 가치와 의미의 재해석’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진정한 독창성은 앞에서 말한 소금과 염전의 역사적, 경제적 흥망성쇠를 소금 그 자체의 물리적 속성과 연결시키는 데에 있다. 인천의 역사가 염전의 생성과 소멸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만큼이나, 염전의 소금은 생성과 소멸의 무한한 순환을 몸소 보여주는 물질인 것이다. 말하자면 염전의 소금은 태양열에 의한 바닷물의 증발로부터 생성되고 다시금 바닷물에 용해됨으로써 소멸되는, 즉 생성의 장소가 곧 소멸의 장소이며 소멸이 다시금 생성의 계기가 되는, 자연의 근본적인 신비가 상연되는 무대의 주인공인 것이다. ‘마감뉴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천 염전의 선형적 역사를 자연이 소금에 선사한 재귀적이고 순환적인 역사와 겹쳐 놓음으로써 문명과 자연이 어떻게 합류(合流)하고 또 분류(分流)하는지 성찰해볼 수 있는 고유한 장소를 마련한다.

소금을 매개로 이루어진 이 문명과 자연의 만남은 아무래도 자연 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그 이유는 우선은 염전이 문명에 의해 조성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전적으로 순응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기상조건과 대기조건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염전은 문명의 산물이되 가장 자연에 가까운 편에 위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마감뉴스’의 지속적인 작업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마석, 양평, 연천, 오대산, 파주 등을 거쳐 올해의 인천 시도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게 한 곳에 이주하지 않고 해마다 작업공간을 바꿔가며 유목의 스타일을 유지해온 이들은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벗 삼아 순응하는 태도로 예술적 행위를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그 결과물로서의 작품 역시 인위적인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대지의 처분에 따라 각자 주어진 소멸의 시간에 맡겨지게 된다. 이처럼 염전의 생성과 소멸, 소금의 생성과 소멸, 작품의 생성과 소멸은 제각각의 리듬으로 역사, 자연, 예술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순환의 원리를 대변하게 된다. 

‘마감뉴스’는 설치그룹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데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대지미술 또는 자연미술을 추구하는 작가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를 견지하지만 인간이 하는 활동인 이상 인위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바, 즉 무위(無爲)에 한없이 가까워지려는 위(爲)의 종류는, 이들이 작가인 까닭에 당연하게도 예술적인 성격의 것이다. 올해 전시에서 이들의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키워드는 ‘꽃’이다. ‘소금, 꽃’, 다시 말해 소금을 발단으로 삼아 피워내는 아름다움의 창작, 그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예술적 완성도를 이끌어내는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또 다른 과정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창작이 아니라 발견의 과정이다. ‘소금, 꽃’이란 단지 소금으로 피워내는 꽃을 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소금 그 자체가 꽃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금은 그 자체로 소금꽃인 것이다. 염전에서 이루어지는 고된 육체노동과 함께 20여 일을 기다리면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소금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소금의 자태가 마치 아름다운 순백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염전에서 소금은 흔히 ‘소금꽃’이라고도 불린다 한다. 그러므로 염전(鹽田)은 사전적 의미로는 소금밭이지만 예술적 의미로는 ‘꽃밭’이기도 한 것이다. 이곳에서 작가들은 때로는 꽃을 피워내기도 하고, 때로는 이미 피어난 꽃을 발견하기도 한다. 

‘마감뉴스’는 꼼꼼한 사전조사를 마친 뒤 10월 13일 시도에 들어와 15일까지 2박3일간 시도염전뿐만 아니라 그 인근의 해변까지 누비며 부지런히 작업을 진행했다. 이 3일간 작가들이 시도 곳곳의 자연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고도 집요한 개입을 시도한 전 과정과 그 흔적이 다함께 모여 올해 ‘마감뉴스’의 특별기획전인 것이다. 작업의 시기를 10월 중순으로 잡은 이유는 염전의 일정을 따른 것인데, 거슬러 올라가면 염전의 일정은 또한 일조량의 변화에 맞춰져 있으니 이 또한 자연에 최대한 순응하는 ‘마감뉴스’의 태도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염전은 3월 말에서 10월 초까지 소금을 생산한다. 낮의 길이가 일정 부분까지 짧아지면 더 이상 좋은 소금을 생산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시도염전의 경우 10월부터 휴식기에 들어간다고 하니, 자연스레 ‘마감뉴스’의 프로젝트 기간은 10월 중순으로 잡힌 것이다. 이들은 염전이 쉬는 동안 잠시 방문을 허락받아 자연과 조응하면서 소금꽃과 만난 것이다. 그리고 염전의 근원이 되는 바닷물을 끌어오는 인근 해변까지 작업의 범위를 넓힌다. 

바닷가 부근에서 발견한 수레바퀴를 가져와 밀물 때 잠겼다가 썰물 때 드러나는 지점에 세워 놓은 작업은 올해 전시의 현판과도 같다. 조수 간만의 차에 따라 드러남과 감춤의 대위법을 무한히 반복하는 바퀴의 모습은 생성과 소멸의 끊임없는 되풀이를 그대로 시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오브제가 바퀴인 것도 자연의 순환성에 대해 시사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또 눈에 띄는 작업은 밀물과 썰물의 주기에 의해 해변에 남겨진 물결자국을 따라 소금을 뿌려 자연의 줄무늬를 가시화한 작업이었다. 해변에 새겨진 흥미로운 줄무늬들은 온전히 자연이 그린 작품이며, 인간은 소금으로 그 무늬에 흰색을 입혀 조금 더 잘 보이게 하는 최소한의 개입에 그친다. 더군다나 그 개입마저도 또 다시 밀물이 찾아오면 자연의 품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이처럼 ‘마감뉴스’ 구성원들은 염전과 해변의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고 소금, 나뭇가지, 돌, 모래 등 자연이 내어준 재료로 자연과 나직하게 대화하면서 경이와 존중의 제스처를 취한다. 휴식기에 접어든 염전의 바닥을 집요하게 닦아내어 둥근 원의 모양을 남긴 작업도 언급할 만하다. 무언가를 더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덜어내는 방식으로 자연의 사물을 발견하게 만드는 작업방식을 잘 보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갤러리나 미술관으로 가져오기가 무척 힘든 대지미술의 작업을 20년이 훌쩍 넘게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감뉴스’의 기획이 우리나라 미술계에 갖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예술미와 자연미, 문명과 자연의 경계를 끊임없이 되묻는 이들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 또한 전국 이곳저곳을 묵묵히 찾아다니며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들을 보듬는 이들의 행위는 예술의 역할이라는 것이 단순히 심미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이고 환경적인 차원까지 다다른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다만 이런 종류의 작업이 가지는 본질적인 한계는 부차적인 방식으로 계속 보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은 그것의 결과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작업의 과정인데, 그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관객의 수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장소의 접근도가 상당히 떨어지고 작업의 수명이 지극히 짧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접근도를 높이고 작업의 견고성을 높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로 임하는 대지미술에게 그것은 곧 대지미술이기를 포기하라는 주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특별기획전이 단지 자족적인 ‘그들만의’ 전시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시도에서의 2박3일 이후의 후속작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진, 텍스트, 동영상 등 확보할 수 있는 여러 기록매체를 통해서 이들의 대지미술이 보다 넓은 의미의 ‘퍼블릭 아트’로 이어지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마련되길 바란다. 

 

글, 사진/ 김홍기 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