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오, 나의 굿즈(goods)!
굿즈(goods)는 상품입니다. 그냥 상품이 아니라 연예인이나 스포츠 팬을 대상으로 디자인한 ‘특별한’ 제품이죠. 아이돌·영화·책․스포츠․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 장르에 소속된 특정 인물이나 작품, 브랜드의 정체성이 ‘굿즈’를 통해 나타납니다. 셔츠, 가방, 배지, 책갈피, 담요, 머그컵, 인형, 식품, 가전제품 등 갖가지 형태로 제작되는 굿즈가 취향과 관심사 등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새로운 소비문화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별 헤는 밤 텀블러’. 윤동주 시 ‘별 헤는 밤’의 구절을 각각 단어로 세분화해 별자리 모양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굿즈는 팬덤을 기반으로 한 ‘덕후 문화’에서 시작됐습니다.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표기 ‘오덕후’에서 온 ‘덕후’는 ‘광팬’ 또는 ‘마니아’라는 뜻입니다. 초기에는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광팬을 가리켰던 ‘덕후’가 시간이 지나면서 개성 있고 가치 있는 소비를 즐기는 젊은 세대라는 의미로 확장됐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상품을 수집하면서 소비 트렌드를 이끌어왔는데 그 예가 바로 ‘굿즈’입니다.
시작은 아이돌 ‘팬덤(fandom)’입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혹은 무리)들은 가요계의 음원 시장과 공연 매출뿐만 아니라 아이돌과 관련한 모든 상품을 사들입니다. 아이돌 굿즈 시장은 연간 1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하는데, 음원 수익이 턱없이 부족한 가요계에 굿즈가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매력 있는 굿즈를 내놓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예쁜 디자인과 높은 퀄리티 때문에 ‘굿즈를 사니, 책이 왔네.’라는 주객전도된 상황도 발생합니다. 독자들의(?) 성원에 알라딘은 홈페이지에 굿즈 항목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일정 금액 이상 도서를 구매하거나 이벤트 도서를 사면 받을 수 있었던 굿즈를 원하는 순간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게 된 거죠.
“굿즈로 주는 유리잔이 너무 예뻐서 제 책을 산 적이 있어요.”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가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두고도 자신의 책을 직접 구매한 이유도 굿즈 때문이었습니다.
출판계의 굿즈 열풍에 우려를 나타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티연구소장은 책값보다 더 비싼 사은품을 끼워 팔아야했던 여성잡지 시장의 포화와 몰락을 지금의 굿즈 팬덤과 연결 짓습니다. 그는 “굿즈의 팬덤은 알라딘의 팬덤이지, 책의 팬덤이 아님을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중략) 출판은 오로지 콘텐츠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지금 출판시장의 굿즈는 한때 잡지의 사은품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합니다.
정치권에서도 굿즈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표지에 등장한 아시아판 타임지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분당 16.6권씩 팔리며 일간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문재인 타임지’에 이어 ‘문재인 넥타이’, ‘문재인 등산복’ 등 이른바 ‘문재인 굿즈’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문재인 굿즈는 ‘문템(문재인 대통령 아이템)’이라고도 부른다네요.
야당 원내대표와 회동할 때 착용한 일명 ‘강치넥타이’는 ‘이응크레이션스’가 112주년 독도 주권 선포의 날을 기념해 만들었고, 기자들과 북악산 산행 때 입었던 오렌지색 등산복도 찾는 이가 많아 블랙야크는 단종 됐던 점퍼를 재출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선거 기간 동안 후보의 굿즈를 활용하는 일이 흔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후보 등은 모자와 티셔츠 등을 제작해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선거 기간 내 굿즈 제작을 법적으로 금지합니다. 지금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문재인 굿즈’는 모두 문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물건들이 굿즈 역할을 한 거죠.
예전에는 팬덤 문화가 인기 가수나 운동선수 등에 국한됐다면 요즘은 범위가 한층 넓어지고,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 여자대학에서는 학교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굿즈로 제작하는 ‘굿즈 열풍’이 한창입니다. 덕성여대는 교화인 무궁화를 마스코트화한 ‘듀롱이’를 제작했습니다. 학교 측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 ‘듈립’의 학생들이 공개했다고 하네요. 동덕여대는 목화를 마스코트화한 ‘솜솜이’ 굿즈가 인기입니다. 솜솜이도 커뮤니티 ‘동감’에서 만들었네요.
이화여대는 배꽃과 곰돌이를 활용한 굿즈를 판매합니다. 배지부터 스노우볼, 찻잔세트까지 그 수가 많아 ‘다이소를 방불케 한다’는 말도 있네요. 숙명여대는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이라는 학교 슬로건에 맞춰 ‘눈송이’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늘 깨어있는 학생들을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의 자태로 상징화했다고 합니다.
2015년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작가미술장터 ‘굿-즈’가 열렸습니다. 미술이 여전히 ‘고급 예술’에 머물러있다는 반성과 한계에서 출발한 행사는 ‘아트페어’가 아닌 ‘굿-즈’를 표방해 생산물의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했습니다. 자신들 역시 서브컬처 굿즈의 소비자이기도 한 젊은 작가들은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고정되지 않은 형태의 작업을 상품화해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굿즈’를 끌어 왔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굿즈의 방식’은 스스로 서로의 소비자가 되고, 예술문화 생산자들과 예술과 문화의 가치를 존중하는 여러 계층 사람들을 구매층으로 상정해 그들이 ‘굿즈를 소비하듯 현대미술을 소비하길’ 기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굿-즈’는 페어, 전시, 프로젝트, 이벤트 등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 실천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난 10월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열린 ‘캐비넷 아트 페어’ 역시 ‘현대미술의 굿즈’ 양식을 기대어 안았습니다. 회화와 드로잉, 사진, 조각, 공예 등의 ‘작가 작품’ 외에 제작 과정 전후의 참고자료, 도구, 재료, 오브제 및 프로덕션 등을 선보이면서 기존의 화이트큐브형 아트페어에서 벗어나고자 했죠. ‘캐비넷 아트 페어’가 추구한 공간은 조용하고 따듯한 빈티지 샵 모델이었습니다. 작가는 완성품(혹은 그와 동일시되는 작품) 뒤에 가려져 있던 과정품(작업의 파생물)을 관객(소비자)과 공유하면서 새로운 소통의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또 다른 ‘굿즈’를 창발해낸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지금 이 시대에 굿즈 열풍이 부는 이유가 뭘까요.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가치에 대한 투자’와 ‘의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참’을 이야기합니다. “잊힐 수 있는 경험과 가치를 기억하고 싶기 때문에 그 기억에 대한 투자로 ‘굿즈’를 사는 것”이라고요. 또 굿즈는 ‘나도 이 사람을 좋아한다’, ‘나도 이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 동감의 표시이자 참여의 중요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 위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글을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1. 유통가 휩쓰는 ‘문재인 굿즈’ 문블렌딩(커피)·이니티콘(이모티콘)·강치 넥타이 판매 불티
매일경제 2017.6.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소비자 ‘덕심’ 자극하는 굿즈의 세계
한경비즈니스 2017.6.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나는 굿즈 때문에 책 산다?
<호수가 보이는 도서관> 2017년 09월호, 한기호
4. 18일 인천 송도 트라이보울서 ‘캐비넷 아트 페어’ 개막
인천일보 2017.10.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굿-즈] 지속가능한 구조를 위한 작은 움직임, 그리고…
<월간 미술> 2015년 11월호, 신혜영
6. 여자대학은 ‘굿즈시대’…인형 등 관련 아이템 입소문
조선일보, 2017.8.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7. 여대들의 독특한 굿즈문화
다음 카페 ‘쭉빵카페’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