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과 여성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이번 호 부터는 인천아트플랫폼의 국제교류사업으로 일본의 요코하마 뱅크아트1926, 인도의 산스크리티재단과의 교류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델리의 전철역 – 여자들 만 탈 수 있는 칸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처음엔 혼자 밖에 나가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지하철을 타고 델리(Delhi)의 시내를 누빈다. 그러나 나는 가방에 항상 페퍼 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닌다. 레지던시에는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꼭 돌아오고, 거리에서 남성과는 이야기를 하거나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한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통행 금지시간을 적용시켰다. 옷은 헐렁한 긴바지에 긴팔을 입는다. 델리의 지하철은 서울의 지하철 같이 깨끗하고 연결이 잘 되어 있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기 전에 보안 검사를 꼭 지나가야 한다. 비행기를 타듯이 가방을 엑스레이 기계에 통과시키고, “Ladies” 라고 씌여진 줄을 따라 가면여자 경찰이 몸 수색을 한다. 이런 보안 경비는 지하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슈퍼마켓, 영화관, 쇼핑몰, 박물관, 심지어는 거리의 시장에서도 보안 검사를 한다.
지하철 안 여성 전용 칸
보안 검사를 지나서 드디어 지하철 플랫폼에 도착하니 여성 전용 칸을 표시해둔 팻말이 보인다. 최대한 보수적이게 옷을 갖춰 입은 나의 걱정과는 달리 지하철 안의 여성 전용 칸에는 민소매 티셔츠와 스키니 청바지를 입은 여성들이 보인다. 그러나 전통 사리(인도의 전통의상)를 입은 여성들도 절반 이상 된다. 여성 칸과 혼용 칸 사이엔 문이 없어서 그 너머로 서있는 남성들이 보인다. 여성 전용 칸의 전체적인 색상이 밝고 풍부하다면 혼용 칸의 색상은 이와 대조적으로 칙칙하다. 어떤 남성들은 두 칸을 잇는 연결 부위에 앉아있다. 공중 화장실에서와 같이 사회적으로 규정된 남녀의 분리된 공간을 여러 공공 장소에서 경험할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는 여성이 혼자 온 경우 가족을 위한 구역에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이렇게 남성과 여성의 공간을 나누게 된 것은 전통적인 관습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된 인도에서의 여성에 대한 범죄 때문이기도 하다.
쇼핑몰 입구의 보안 검사
인도에 간다고 말했더니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말렸다. 여자가 혼자 여행하기엔 너무 위험한 나라 아니냐고. 그렇다. 2010년도 이후로 가장 눈에 띄는 인도에 관한 뉴스 기사들은 죄다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델리에 도착하는 첫날부터 내가 가장 인상 깊게 관찰하게 된 것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제도와 여성의 권리, 그리고 인도 신화와 종교 간의 연관성이다. 인도는 거대한 나라이고, 그 인구의 숫자가 중국과 맞먹는다. 그에 반면 면적은 중국의 1/3밖에 되지 않는다. 땅덩이가 크고, 인구 밀도가 높은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또 인도는 가까운 미래에 중국 다음으로 큰 경제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인도의 수도인 델리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와 같이 현대적인 삶이 빠르게 전근대적인 삶의 모습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여성에 대한 범죄는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전통사회와 현대사회의 마찰이라고 생각한다.
지하철 역의 광고 : 여자아이를 버리지 마세요. 여자아이를 존중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남녀의 성비가 5대 1이 될 것입니다.
* 이 광고는 인도에 아직 남아선호사상이 존재하고, 여자아이를 시집 보낼 때 예물을 차려야 하는 관습의 부작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들의 뿌리는 오랫동안 남성우월주의를 지지해온 전통사회의 악습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중동의 국가들에서도 여성에 대한 범죄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기독교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그 외에 델리와 같은 대도시에 현저한 빈부격차도 이러한 범죄에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에서 묘사하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이 문제를 종교와 연관시켜 생각해 보고자 했다. 인도는 힌두교 신자가 거의 80%이고, 그 다음으로 이슬람교(14.2%), 기독교(2.3%), 시크교(Sikh, 1.7%), 불교(0.7%), 자이나교(Jaina, 0.4%) 등의 종교 신자들이 있다. 이 글에선 인도에서 가장 많은 신자가 있는 힌두교를 다루도록 하겠다.
힌두 종교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묘사된다. 여성의 가치는 그녀의 신체적 미와 정절에 의해 평가되고, 결혼은 여성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대한 결정으로 표현된다. 힌두교의 중요 세 신들(Trimurti)인 브라마(Brahma, 창조자), 비슈누(Vishnu, 수호자)와 시바(Shiva, 파괴자)는 모두 남성으로 묘사되고, 그들의 배우자인 사라스바티(Sarasvati), 락슈미(Lakshmi) 그리고 파르바티(Parvathi)는 그들의 반쪽이자 여신들이다. 기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힌두교에서도 최초의 여성은 남성의 욕구에 의해 그의 몸의 일부분을 추출해서 태어나게 된다. 이러한 창조설은 여성의 자율성을 상징적으로 남성에게 가둔다. 모든 인간이 여성의 자궁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종교의 이러한 창조설들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인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힌두교는 두 가지의 성스러운 신화,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와 <라마야나(Ramayana)>가 그 내용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힌두교에서 섬기는 다양한 신과 여신들은 모두 이 두 가지 서사에 등장한다. 인도의 전통화와 조각들에 묘사되는 인물들은 모두 이 신화들의 등장 인물들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 서사 신화들의 내용을 알지 못하면 인도의 전통미술과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 신화들은 그리스 신화가 그렇듯이 상징적이고, 고대 사회의 철학과 사회 관습, 정치적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신화들은 <리그베다(Rigveda)>나 <우파니샤드(Upaniṣad)>와 같이 좀 더 형이상학적인 성서와 달리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쓰여진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까지도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의 내용과 인물들은 춤과 연극, 미술의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힌두 종교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음양오행설과 비슷하게 여성과 남성의 조화가 우주를 이루고 있고, 이는 시바와 샥티(Shakti)라는 신과 여신으로 상징화 된다. 이 세가지 신화들에 등장하는 신과 여신들은 모두 시바와 샥티의 아바타(Avatar. 권화, 부활한 존재)들이다. 여기까지는 우주와 세계에 대한 조상들의 이해가 상당히 철학적이고, 사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신화들 각각 그것들이 구전되고 기록되는 과정에서 당시 기권 세력에게 유용하게 내용이 덧붙여지고 수정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이 신화들의 세계에는 신과 인간 그리고 악령들이 존재한다. 높은 지위에 태어난 인간들은 신과의 관계에 의해, 혹은 정신적 수양을 통해 신적인 능력과 지위를 획득하기도 한다. 이렇게 수양을 통해 신적인 능력을 획득하는 사람들은 거의 남성들이다. 그들은 모두 어린 시절의 교육과 결혼, 그리고 가정을 이루는 과정을 거친 후 출가하여 수양의 길을 떠난다.이 신화들에서 여성은 사랑과 정절을 통해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에, 그리고 남성은 정신적 완성의 길을 갈 것을 제시한다.
신화에서 주로 묘사되는 사건들은 여러 왕권들과 부족 사회들이 결혼과 교혼을 통해 자신들의 혈통을 유지하고, 영역과 영향력을 획득하거나 잃는 과정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전쟁들은 선과 악의 싸움이기도 하다. 신화에서 다루어지는 인간 여성들은 남성들의 싸움의 원인을 제공하거나 싸움 끝에 교환되는 전리품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부인이거나 딸로서, 그 아름다움과 정절이 항상 강조된다. 여성이 자신의 남편에 대한 정절을 죽음을 무릅쓰고 지켰을 때 그녀는 신들에게도 존경을 받게 된다. (한국 설화에도 이러한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 있다) 또, 일부다처제가 자주 언급되는데, 이것은 왕가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제도로 제시된다. 남자아이의 출생은 이렇게 혈통을 유지하는데 온갖 신경을 쓰는 고대 사회에선 최고로 중요한 일임이 당연하고, 이는 이 두 가지 신화에서 번복해서 발견되는 요소들이다. 예외적인 경우로는 드라우파디(Draupadi)라고 불리는 공주가 다섯 명의 형제들과 결혼한 부분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찾아본 결과, 이는 인도에 존재하는 여러 부족들 중에 일처다부제를 시행하는 부족이 있었고, 이 부족의 관습을 대변할 수 있는 여신이 드라우파디라고 한다.
인도에서 가장 많이 숭배되는 라드하와 크리슈나(Krishna). 크리슈나는 그의 헌신적인 추종자들인 고피(양 혹은 염소 치기의 부인)들을 모두 받아들인다. 라드하(왼쪽)는 크리슈나의 아내로 고피들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유디쉬트라가 두르요다나의 도박에서 그의 아내인 드라우파디를 잃자, 승자는 드라우파디의 옷을 벗길 것을 요구한다. 크리슈나 신이 드라우파디의 기도를 듣고, 그녀의 옷이 영원히 벗겨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다 몸져 누운 공주
라드하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는 크리슈나
결국 다신교인 힌두교는 이렇게 다양한 부족과 종족들을 인도라고 하는 한 나라에 포용시키는 지혜로운 장치였다고 여겨진다. 내가 인도의 종교 관습에 대해서 높이 사는 점은 바로 이 유연성이다. 사회가 변화하면 종교와 전통 관습도 그에 따라 변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교육 받은 여성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인도는 세계의 다른 나라들처럼 남성 우월주의에서 벗어나 남녀평등주의로 이동해 가야 할 것이다. 종교 또한 이러한 사회적 방향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인도는 개정된 서사 신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는 인도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세계의 종교들은 과거의 관습을 현대적인 눈을 통해 다시 재해석하고 개정해야 할 것이다.
파괴의 여신 칼리(Kālī)
파괴의 여신 칼리-2
번영과 부의 여신 락슈미와 그의 남편 비슈누
12년 전, 그러니까 2005년에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도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자』를 읽었었고, 동양의 사상과 종교, 인류 7대 문명의 발원지인 인도에 가면 인간의 역사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실제로 그때 잘 모르고 떠난 인도여행은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여행으로 기억한다. 처음 인도를 접했을 때의 느낌은 감춰졌던 이 세상의 일부분을 목격한 듯한 ‘센세이션(sensation)’이였다. 서양의 문화와 도시적인 삶에만 익숙했던 나에게 인도는 사람이 사는 모양새가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나라이다. 또한 서양식 미술교육을 주로 받아온 나에게 인도의 미술과 건축은 전혀 다른 미의 기준점을 제시해 주었고, 이것이 유럽 중심주의 적인 관점의 가치가 사물과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지,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다시 찾은 인도는 12년 전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인도는 너무도 다양한 얼굴을 가진 나라임에는 변함이 없다. 10월 초엔 두르가(Durga, 전쟁의 여신)라는 여신을 섬기는 축제가 열린다. 여신을 숭배하는 만큼, 여성을 존경하고 여성이 남성과 같은 권리와 지위, 그리고 자유를 가질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바랄 뿐이다.
파르바티의 또 다른 아바타 전쟁의 여신 두르가
글, 사진 / 이영주 작가
이영주는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산스크리티 레지던시의 국제교환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인도의 델리와 자이푸르에서 한달 반 간 체류했다. 인도 전통미술에서 묘사되는 종교적 상징과 체계에 관심을 가지고 출발한 이 여정은 30미터 가량의 두루마리 그림으로 기록했다. 이영주는 신화와 꿈의 서사구조를 이용하여 개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애니메이션 영상 설치와 퍼포먼스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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