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の요코하마の감상기에서 적응기로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이번 호 부터는 인천아트플랫폼의 국제교류사업으로 일본의 요코하마 뱅크아트1926, 인도의 산스크리티재단과의 교류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가마쿠라(鎌倉)는 요코하마에서 전철로 20분 거리로 아주 가깝다. 절과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바닷가가 있어서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사진ⓒ노기훈

일본 레지던시에서의 생활. 당신이 만약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본 레지던시의 매력은 어디까지일까? 지금 일본 레지던시에 있는 나는 이 방대하고 활기찼던 경험들을 단지 글과 사진으로만 풀어내야만 하는 고욕이 눈앞에 있다. 벌써 2달이 거의 다 되어버린 10월 중순에 펜을 집어 들었다. 일본에 온 이후로 일기는 하루하루 고행처럼 계속해서 써왔지만 그걸 그대로 까내서나의 생활을 남들에게 일일이 간증하는 수치스러움과 차별을 두고자 여기 ‘지구별 통신’ 페이지에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은밀하게 조합된 실용적인 글쓰기를 하고자 한다. 여기 있었던 일들을 자랑하자니 벌써부터 흥분해서 어느정도 과잉상태이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첫 문장을 고심하다가 ‘눈앞에 있다’라는 형용으로 마무리 지었다. 보이는 것과 관련된 미사여구는 시각예술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신중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런 경솔함 따위를 상쇄할 정도의 이미지가 이번 요코하마 뱅크아트1926 NYK레지던시(이하 뱅크아트레지던시)에 참여함으로 인해 생겨버렸다.

뱅크아트1926 NYK레지던시에서 바라본 요코하마. 인천으로 치자면 송도인 미나토미라이가 멀리보인다. 사진ⓒ노기훈

2017년 8월 15일에 시작된 일본 생활이 추석을 지나 11월을 바라본다. 소위 기억이라는 것이 온전하게 이미지로 치환될 수 있는 유통기한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대개 보존력은 비일상적인 경험의 수효에 따르고 이미지의 형태는 사진적이다) 일본 레지던시 생활은 당장 주머니 속 화첩처럼 꺼낼 볼 수 있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정말 사진집이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다. 과거를 평가하는 출제위원이 와서 문제지를 내주고 ‘2017년 당신은 뱅크아트레지던시에 있었다. 2017년 8월 15일부터 2017년 10월 10일까지의 하루하루를 사건 순으로 낱낱이 서술해 보라’고 하면 정답에 버금가는 오답은 간단히 적을 수 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겪은 생활은 현재진행형으로 쭉 이어져가고 있어서 기억으로 용해되기에는 너무도 생생한 현실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고 지금 눈앞에만있을 것 같다. 이번 글이 일본 레지던시 생활을 풀어내는 첫 장이다. 그러므로 좀 과장되게 들리겠지만 이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중을 담아 일본 생활에 대한 감격을 기록해 나가고 싶다.

나는 이 글을 누군가가 아주 오랜 후에라도 봤을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작가가 작업을 실행해 나가는 과정은 인지와 수용 그리고 결과물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요코하마에 있는 뱅크아트가 아니더라도 일본에서 작업하고자 하는 누군가가 필히 당면할 문제가 있다면 이 ‘지구별 통신’이라는 기획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 일대는 쇼핑의 천국이다. 주말에는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열려 가족단위 관광객이나 젊은 커플들이 많이 찾는다. 사진ⓒ노기훈

나는 수치스럽지만 일본인과 한국인이 비슷하다고 한다면 외향적인 유사성을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발달 단계라고 생각한다. 키가 자연스럽게 커진 성인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 다리뼈를 이어 붙인 애어른이 같은 속도로 달릴 수는 없다. 일본에게는 근대로 서서히 변화해 간 과정이 있어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이야기 할만한 기억의 추이가 있다. 그게 나쁘든 좋든 공동의 기억은 한 국가를, 한 사람을 지탱해 주는 내적인 힘이 된다. 하지만 기억상실을 한 이후에 자기도 모르게 부잣집 도련님이 되어 있다면 개인적으로 봐서는 지극히 황송한 일일 테지만 남들 앞에서 좋은 자가용을 타고 즐기는 것이 유일한 낙일 뿐, 기억을 불러 올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 같은 건 애당초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른들과도 항상 사이가 좋지 못하다. 언젠가 다리가 아파와 병원에 가봤자 아버지를 원망하며 다시 떼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그 기간은 마치 프로포폴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 시간이다.

하지만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과 별개로 인천과 요코하마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나라를 비교할 때는 크게는 중세나 근대, 현대로의 이행과정 작게는 전체적인 환경에서 비롯되는 깨끗한 느낌이나 버스 줄서기를 할 때의 질서정연함과 같은 것들이 평가 되는데 도시를 비교하자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도시는 도시마다 천차만별이어서 개별적인 비교 단위로 삼는 것도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 된다.

그 많은 도시 중에 인천과 요코하마. 인천과 요코하마는 둘이서만 속삭이는 공통된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하인천을 걸어 다녔을 때 보았던 그 기시감과 다르지 않다. 인천에서 생활을 한 사람이면 뱅크아트를 가기 위해 간나이 지역에 오면 데자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축이 난장판이 돼버린다. 잃어버린 오래된 형을 찾아와 흔적을 뒤쫓는 기분으로 요코하마는 인천에게 있어 평행이론에 근접한 도시상을 만들어 낸다.

인천과 요코하마라는 두 도시는 카페에 앉아서 서로의 과거를 이야기 하며 맞장구 칠 수 있는 요소가 너무도 많아 몇 시간이고 수다를 즐길 수 있는 반죽이 잘 맞는 선후배다. 타지에서 인천에 도착하여 인천이라는 도시가 주는 압박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나로서는 요코하마 역시 도쿄와는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을 마치 인천을 경유하여 다다른 끝판 대장에 선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장소에서 커왔지만 같은 조건에서 잉태한 기억을 요코하마와 인천은 손위아래처럼 공유하고 있다.

요코하마 바샤미치 거리의 오래된 카페 앞에 있는 수반마우(水飯牛). 거리에 말과 소를 물 먹이던 곳이 남아있다. 바샤미치는 말 길을 뜻한다. 사진ⓒ노기훈

이렇게 수도의 변방에 위치한 두 도시가 악수를 하고 작가를 교환했다. 나는 2017년 8월 15일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유달리 비슷한 두 지역에서 자신들이 선정한 작가를 보내는 것을 보면   단지 좋은 작업만을 해오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나는 유심히 고민을 해봤다. 어떤 교류라는 측면에서 나라 대 나라도 아니고 도시 대 도시도 아닌, 정말 개인으로서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부딪히며 내가 무언가를 대변하여 유익하게 작용하는 지점이 어디에 있을까. 불면의 나날들을 이기고 나서 나는 몇 가지 유사점에 주목했다. 최초의 개항지라는 점, 그로 인해 최대의 중국인 마을이 있다는 점, 야구에 환장하지만 정작 야구를 잘하지 못하는 팀을 가지고 있고 광역시 내부의 각 지역마다 분별된 입지차이가 있어 경제적으로나 인적 구성이나 편차가 심하다는 점. 도쿄와 서울의 변방이라는 이미지가 족쇄처럼 따라다닌다는 점. 생각나는 것들 몇 개만 추려보아도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몸이 이것들을 다 소화하지 못해서 이상한 곳에 엉겨 붙으며 도처에 널린 작업거리들을 물색하고 다닌다고 거의 방전상태에 빠졌다. 인천에서 본 20세기 초의 풍경들이 요코하마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는데 그것을 지키고 다듬는 방법에는 좀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미리 밝혔다시피 나에게 그것은 20세기 중반과 후반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우리는 여기에 서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남았다. 아마 그걸 알고 싶은 욕구가 작업을 추동하는 일부분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한 면에서 인천을 경험한 작가에게는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의 원천이 그야말로 널리고 널려 있었기에 매일 약에 취해 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작업은 하이(high) 보다는 로우(low)에서 진척되는 법. 정신을 가다듬고 매일 끄적거려 내려간 작업리스트를 분별하고 여과하니 남은 건 역시나 처음에 기획하였던 ‘일본 1호선(가제)’이었다.

신주쿠 공원은 넓이 58만3,000제곱미터, 주변 둘레 3.5킬로미터에 이르는 신주쿠 일대가장 큰 공원이다.  뱅크아트 스튜디오와 인접한 미나토미라이선 바샤미치역에서 전철을 타면 신주쿠까지 환승 없이 50분만에 도착한다.  급행을 타면 40분도 안되어 도착한다. 인천하고 참 비슷하지 않은가? 사진ⓒ노기훈

인천역에서 노량진역까지의 거리가 32.94km이니까 요코하마 사쿠라키초역(桜木町駅)에서 도쿄 신바시역(新橋駅)까지 거리는 29.40km 정도로 엇비슷했다. 중간에 부천시와 가와사키시가 동일하게 전통과 근대로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점도 비슷했다. 뱅크아트의 실무를 맡아보는 츠자와 상의 도움으로 1호선에 관한 책상 앞 리서치를 완료하고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 거의 망가지다시피 한 크림색 자전거를 뱅크아트로부터 빌렸다.
안장은 조절이 안되고 타이어도 힘이 빠져 있었지만 뭔가 큰 기대가 되었다. 이건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책상 앞에 붙여져 있던 작업리스트들이나 레퍼런스를 모두 떼어내고 ‘저는 지금 작업기간입니다’라는 문장만 붙여 놓았다. 요코하마와 인천에서 발견했던 유사성을 한국 1호선과 일본 1호선이라는 직선적 동선에서도 발견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의 시각에서 비롯된 유사성들이 물론 누구에게나 동일한 시각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라는 생태가 비슷한 경로를 통해 지금의 요코하마와 인천으로 변모해 왔듯이, 도시의 단위가 아니더라도 철도라는 긴 여정에서 발견 하게 되는 역사적인 기시감과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이미 신바시역에서 첫 기차가 출발하기 기다리는 1872년 10월 14일 어느 누군가가 느꼈을 시공간의 압축감을 그대로 이어받으며 저만치 노량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글,사진/ 노기훈 작가

 

노기훈은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뱅크아트 스튜디오의 국제교환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8월부터 11월까지 일본에 체류한다. 사진카메라와 영상카메라로 주로 찍어 내는 활동에 관심이 많으며 사진과 기행문을 동시에 써서 글로 찍기도 한다. 인천역에서 출발하여 노량진역까지 최초의 철도 경인선을 따라서 사진 찍었으며, 지금은 일본 1호선인 사쿠라키초역에서 신바시역까지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