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대, 베스트셀러

오늘날 서점에 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은 분야별 베스트셀러가 전시되어있는 코너에 사람들이 붐비는 모습이다. 베스트셀러는 옛날부터 그 시기 대중들의 감수성, 꿈, 욕망을 반영하고 충족시켜왔다. 19세기 말 근대부터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베스트셀러는 어떤 작품들이었을까? 지난 26일 오픈한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진행된 한국 근현대 베스트셀러 특별전에 다녀왔다. 전시 작품들은 한국의 근대 계몽기부터 1980년대 무렵까지의 소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 19세기 말부터 근대까지의 한국문학의 베스트셀러는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계몽 열망이 베스트셀러를 만들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우리 현실은 외세의 침입과 이에 무력한 집권 계층, 민중들의 개혁 요구 등 혼란과 격동의 시대였다.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갔던 혼란한 시대였던 만큼, 이때의 시대적 화두는 ‘계몽’이었다. 이인직의『혈의누』와 역사전기소설 『월남 망국사』,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계몽을 주장하면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은 대표적 작품들이다.

그중 소개할 작품은 『만세보』의 주필 이인직이 1906년 7월 22일부터 집필한 『혈의 누』이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 신문에 연재한 첫 신소설로 10월 10일까지 50회에 걸쳐 실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연재소설이며 현대 소설을 태동시킨 초석이기도 하다. 신소설이란 20세기 초에 나온 새로운 양식의 소설로서 고소설 혹은 구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란 의미로 이인직이 『혈의 누』를 연재하면서 붙인 데서 유래했다.『혈의 누』는 1907년 광학서포에서 나온 뒤 1926년까지만 해도 각각 다른 출판사에서 300여 종이나 발간됐다. 이 소설의 중심 이념은 유교적 질서에 반대하고 신문명과 신교육을 추구하는 개화사조이다. 『혈의 누』에서 나타난 이념들 때문에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의 대화에 화두에 오르며 비난받기도 했는데 이은호는 “새로운 문물만 받아들이면 나라가 부강해질 것이라는 소박한 낙관주의는 외세를 끌어들이고 우리 민족을 그 아래 굴복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이인직이 외세, 특히 일본에 대한 환상에 빠져 이완용의 수족 노릇을 한 것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며 비판했다.

『혈의 누』에서 이런 비판이 나오는 까닭은 책에 작가가 의도한 일본의 찬양적인 면모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 중에는 어머니 최 씨 부인이 청일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시내를 헤매다가 어떤 남자한테 겁탈 당하려는 찰나 일본 헌병이 이 부인을 구해준다. 또한 주인공이 가족을 다 잃고 헤맬 때에도 매번 일본 군의관이 도움을 준다. 이러한 내용들은 일본을 찬양하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있는 것이라며 비판받았다. 이렇게 이 소설은 일본 찬양, 낙관적 개화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나 다른 한편 대중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어체 문장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 상투적인 한문구를 배제한 것도 이 소설의 성과이다. 이처럼 쉬운 문장은 훗날 우리나라에서 현대 소설을 태동시키는 초석이 되었다.

긴 이야기 읽기가 대중화되다.
일제의 강제병합과 3.1운동을 각각 시대의 출발점으로 삼는 1910년대와 1920년대는 나라는 비록 일제 식민지로 전락했지만, 근대적 책의 출판과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의 등장, 책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서점과 출판사의 출현이 본격화되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울긋불긋한 표지로 된 ‘딱지본’들이 크게 유행했는데, 대개가 주인공들의 뜻하지 않은 이별과 만남, 박해와 고난 등 기구한 운명을 겪는 이야기들이었다. 또한 당시 젊은이들의 연애와 사랑 이야기, 외국 작품의 번역물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청년 학생들이 근대적 독서층으로 출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장한몽』과 『추월색』, 『무정』, 『사랑의 불꽃』등이 대표작이다.

그 중 조중환의 번안소설은 한 시대를 풍미한 이인직, 이해조의 신소설이 멈춰 선 자리에서 출발했다. 신소설은 소설의 분량과 규격이 고정되면서 상상력의 확장을 감당할 만한 융통성과 대응력을 상실했다. 그러다 보니 신소설은 복잡하고 유기적인 힘과 매력을 잃은 채 마치 줄거리를 요약해 전달하듯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조중환의 번안 소설은 장편 소설에 걸맞은 입체적인 구성과 밀도 높은 심리 묘사, 다양한 표현 기교 등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조중환을 필두로 하는 전문 번안 작가들이 이끌어 간 ‘순 한글의 한국어 문장’으로 새로운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번안 소설의 시대는 사실상 근대소설의 시대를 의미한다. 번안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서구적인 장편 양식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근대적인 독서훈련을 거쳤다. 책 속에는 근대 한국 사회의 흥미로운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서양인 고리대금업자, 교회 전도사, 대보름 윷놀이 판이 벌어지는 서울 부촌 골목의 기와집에서 애급 궐련을 피우며 맥주와 카레라이스를 먹는 요릿집까지 신혼여행이라는 외국 풍속에서 광기, 멜랑콜리아. 정신병 등의 근대 의학 용어까지 번안 소설의 주인공들과 그들의 삶을 에워싼 온갖 군상들은 그대로 근대 한국의 만화경이었다. 조중환의 번안 소설『장한몽』은  3권 2책의 활자본으로 1913년 유일서관에서 간행하였다. 주인공 이수일과 심순애의 비련을 그린 이 작품은 물질적 가치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작품 속에서 보여준다. 작품은 순수한 한국적 배경과 유형으로 개작되어 수많은 개화기의 독자를 얻었다. 당시에 크게 유행하였던 신소설과 고소설을 압도하고 소설과 연극으로 신문학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신소설의 퇴조와 함께 이후의 통속적 애정소설의 등장을 재촉했으며, 연극에서도 이후 신파극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그 파급효과가 컸던 작품이다. 

고단한 현실을 견딘 힘이 되다.

1930년대는 한국 근대문학이 화려하게 꽃 핀 시대였다. 일반 단행본은 물론 다양한 문고본과 전집류도 인기리에 발간되었으며 사회주의 내용을 가진 작품들까지 잘 읽히는 등 근대 출판시장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고, 또한 동시에 이들 작품들을 사서 읽어 줄 독자층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갔다. 일제 통치가 점점 군국주의로 바뀌게 되는 1930년대 후반에는 수십 판을 찍는 초 거대 베스트셀러가 등장했다. 춘원의 『흙과 사랑』 이기영의 『고향』, 박계주의 『순애보』와 김말봉의 『찔레꽃』, 김내성의 탐정소설 『마인』 등이 대표작이다. 그중 지고지순한 사랑과 희생을 그린 박계주의 『순애보』는 판단 1천 부에서 급기야 해방 직전에는 5천 부를 발행하는 등 폭발적 인기를 끈 작품이다. 박계주의『순애보』는 1938년 매일신보의 장편소설 현상모집에 당선되어 1939년 1월 1일부터 6월 17일까지 연재되었고, 같은 해 10월 매일신보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된 작품이다. 작품은 고귀한 품성을 지닌 주인공들의 자기희생적인 애정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주된 줄거리는 최문선이라는 청년과 윤명희라는 처녀의 애정담이다. 이 작품이 대중적인 독자층의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까닭은, 작가가 의도한 지순한 사랑의 요구가 그 시대 독자층의 갈망과 부합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독자들은 이런 소설들을 읽으며 점점 극심해지는 일제 탄압의 현실을 견뎠다.

전후 복구 현실에서 소설에 열광하다.
해방은 격렬하게 민족의 문제를 대중들에게 각성시켰으며 곧이어 터진 전쟁은 전 국토를 황폐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한편 전쟁은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분단이 고착화되었고 미국을 대표로 하는 새로운 대중문화가 한국인의 일상을 바꿔놓는다. 미국이 모범이었고 미제 물건은 상류층을 상징하는 문화적 코드였다. 자유연애 일하는 여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시간이 점차 흘러가고 전쟁의 상흔도 이겨내면서 다시 우리의 근대사를 돌이켜보는 작업이 시작된다. 민족의 문제를 거시적 차원에서 그리고 진지하게 성찰하는 노력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청춘극장』과 『자유부인』, 『광장』, 『토지』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이다.

전후 한국 사회는 서구 문물과 외래 사조가 도입되면서 문화적 정체성에 혼란이 일고 있었다. 1954년 1월 1일부터 <서울신문>에 작가 정비석이 연재한 소설 『자유부인』은 그런 세태를 잘 반영해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정비석과 황산덕 사이의 논쟁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는데, 대학교수 부인의 불륜을 그린 이 작품에 대해 황산덕은 (<대학신문>54년 3월 1일 자)을 통해 자유부인이 대학교수를 모독했다고 비난했다. 그 이유는 자유부인의 그 시대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선정적인 장면과 자극적인 내용 때문이다. 자유부인의 내용 중에는 주인공 장태연 교수가 아내를 찾아온 이웃집의 미군부대 타이피스트 반은미양을 맞아들일 때 ‘감색 스커트 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은미의 하얀 종아리에 별안간 가슴이 설렜다’는 내용 등은 그 시대 상상하지 못할 선정적인 장면이 적나라하게 싣고 있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저자 정비석은 전혀 소설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라고 대응하며 논쟁했다. 그 밖에도 치안기관들은 정비석을 불러 ”이북과 관련이 없는가?“ 그리고 ”불순 세력의 공작비를 받고 쓴게 아닌가?“라고 추궁하기도 하며 『자유부인』은 사람들의 비난과 평가에 시달렸다. 정비석의 회고에 따르면 

“『자유부인』을 쓰면서 서울시경 특무대 등 수사기관에 안 붙들려 간 곳이 없었어요.  일부독자들은 이적행위라고 몰아붙였고 여성단체들은 여성모독이라고 고발했고 그런가 하면 이북에서는 또 자유부인을 남조선의 부패상을 그린 교양자료로 사용했다나, 그걸 모르고 동네 사람들은 금테 두른 모자를 쓴 경찰관이 차로 나를 연행해 가는 것을 ‘저 양반이 언제 저렇게 출세했나’ 그랬대요” (<정비석의 회고 중>) 

이렇듯 자유부인은 갖가지 화제와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 시대의 소설의 80%가 남녀 간의 사랑을 담고 있었던 만큼 자유부인의 자극적인 내용들과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주제는 전 국민적인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밀리언셀러와 전업 작가가 탄생하다.
1970년대는 유신으로 대표되는 독재체제의 긴 터널이 시작되는 한편으로 산업화가 이뤄낸 달콤한 풍요가 어두운 터널 속의 조명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시대였다. 대중문화와 소비사회가 형성되면서 소설가도 소설로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례가 출현한다. 도시에서는 청년들이 청바지 차림에 통기타로 상징되는 청년문화가 유행했지만 밤에는 시골에서 상경한 누이들의 아픔도 병존했다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등장한 제5공화국은 그 구호가 결국 구호에 그쳤음을 당시 작품들은 보여주었다. 그리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분단 문제도 작품화되어 독자들의 커다란 사랑을 받은 작품들이 등장한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과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조해일의『겨울여자』, 김홍신의『인간시장』, 조정래의『태백산맥』등이 대표작이다.

그중 최인호의『별들의 고향』은 1972년 9월 5일부터 1973년 9월 14일까지『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이후 1973년 예문관에서 상·하 두 권으로 출간된 소설이다. 이 작품은 한 젊은 여성의 성적 편력을 통해 1970년대 소비문화의 문제점과 1970년대 한국 사회가 지닌 산업화 과정의 병폐, 참된 사랑이 결여된 인간의 소외, 개인의 행복만을 위해 줄달음치는 현대의 상황이 신선한 문장과 날카로운 감성으로 형상화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근대계몽기부터 1980년대까지의 베스트셀러들을 살펴보며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 군중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고 그 시대의 사회문제, 사랑, 사람들의 삶에 항상 맞닿아 함께 고민하며 삶의 위안과 욕망을 충족시켜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를 읽어보면 그 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이듯 앞으로 쓰이는 베스트셀러들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적히는 역사의 한 페이지일 것이다.

 

글,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최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