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도시 인천, 느끼는 도시 인천.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린시절 국민학교 사회 시간을 기억해보면, 3학년 한 학기는 각자의 고장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 마을, 우리 구, 우리 시. 인천에 대해서 처음으로 배웠던 때, 인천을 설명하던 표현은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수도권의 관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 새롭게 사용되고 있는 인천의 브랜드는 “All ways INCHEON”입니다. 1883년 개항 이후 약 150년 가까이 인천의 아이덴티티는 교통의 시작점이자 수도권의, 나아가서 우리나라의 입구와 같은 역할에서 정의되는 것 같습니다. 21세기 들어서 공항이 이러한 이미지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만, 전통적으로 인천의 아이덴티티를 만든 것은 역시 항구와 바다일 것입니다.
누구나 아시다시피 인천의 바다는 여러 의미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쳐오며 바다는 해안가를 따라 생겨난 공장의 차지였고, 수출의 통로였습니다. 경기만의 수많은 섬들과 태안, 서산에 이르는 여객선 운항의 중심도 인천의 연안부두였습니다. 그리고 북쪽으로 접경이라는 점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해군 제2함대가 인천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해안가가 철책이 둘러있어, 인천에 산다 하더라도 인천의 바다를 느끼고 즐기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바다의 도시 인천에 정작 바다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지난 2014년에는 인천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사진공간 배다리가 주최한 ‘해안선은 없다’라는 사진전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이야기에서 바다와 해변의 얘기를 하는 이유는, 바다가 우리의 도시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각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의 바다에서 그러한 감각의 경험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서구 회화에서 원근법을 발명한 이래, 오랫동안 서구의 도시와 그를 본받은 다른 세계의 도시들은 직선의 잘 정리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더 이성적이며, 더 아름답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근대건축의 아버지인 르 코르뷔제는 사람의 몸을 통해 ‘모듈러’라는 너무나 인간적인 길이 체계를 고안하고도 그것을 통해 ‘살기 위한 기계’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건설하고, ‘빛나는 도시’를 그려냈습니다. 1800년대 중반 파리 시장 오스망의 파리 대개조나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이후 도시 재건에 영향을 준 도시미화운동 등 무수한 도시 계획이 주는 선명함과 명료함 또한 이러한 믿음의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명함과 명료함은 도시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 도시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모형으로 바라보며, 지도로 관찰하는 통치자의 더 쉬운 통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더 쉬운 통치를 위한 더 쉬운 관찰, 즉 ‘가독성(legibility)’의 확보는 권력을 가진 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도시의, 그리고 국가의 모든 것들, 인구, 사회, 자연의 모든 측정 가능한 것들을 숫자와 지도로 만들어 냈습니다. 근대 국가가 지도와 통계의 확보에 골몰한 것은 그들의 통치 대상을 한 눈에 더 잘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최근의 도시는 권력자의 목적을 넘어서 스스로 시각화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고도로 자본주의화 된 도시는 이제 소비의 공간이 되어 도시 속 사람들에게 소비를 권장하는 거대한 간판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건축가 로버트 벤츄리는 건축물을 ‘Duck(오리)’와 ‘Decorated Shed(장식된 창고)’로 구분합니다. 그는 건축물에서 장식을 걷어내기 위해 결국은 건물 전체가 거대한 상징이 되어버린 모더니즘 건축을 오리를 파는 오리모양 건물로 비유하면서 경직성을 비판하고, 창고와 같이 도로에 면하는 앞면을 적합하게 디자인한다면 어떤 용도로든 쓸 수 있는 건물의 유용함을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더 상업적인 건축물에도 어울리고, 급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도 더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시대의 건축과 도시 공간은 평범한 네모진 건축물의 파사드와 공공 교통과 광장과 거리를 빠짐없이 간판과 조명과 각종 상징들로 장식하여 도시 사람들의 눈을 끊임없이 유혹해 왔습니다. 더 많은 소비를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최근의 어떤 흐름은 도시의 삶을 ‘보고 소비하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걷는 것’ 입니다. 제주의 올레길에서 시작한 걷기 문화는 이제 도시 안으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강화군처럼 지자체들이 자체적으로 둘레길을 조성하기도 하고, 구도심의 새로운 여가문화는 차량을 통한 접근보다는 골목을 걷도록 유도합니다. 도시의 일상적 삶에서 벗어난 공간에서 더 느린 이동을 통해서, 도시 사람들은 시각 외의 다른 감각을 더 많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어떤 공간의 경험이 보는 것뿐 아니라 소리와 촉감, 냄새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또 도시 내에서의 자전거 사용의 증가와 전동휠과 같은 퍼스널 모빌리티의 보급은 속도를 포기하지 않고서도, 또 더 많은 일상적 도시 공간에서도 사람들을 자동차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도시 공간을 더 많은 감각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바다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특별히 무엇인가를 더 찾아내지 않더라도 시각 외의 모든 감각들을 더 적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란 생각이 듭니다. 처음 해변에 도착하면 넓은 시야와 푸른 색깔이 사로잡지만, 그 바다와 해변에 더욱 오래 머물게 하고, 기억에 남는 것은 냄새와, 소리와 촉감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인천은 그동안 인천의 바다를 시민들로부터 분리해 둠으로써, 인천에서 만날 수 있는 어떤 중요한 경험과 기억의 권리도 막아 두었던 것은 아닐까요.
관광지가 아닌 곳으로의 여행이 늘어나는 것은 시각 이외의 감각의 경험이 더 공간을 체험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바다를 시민들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다양한 감각으로 도시를 경험하는 것은 정말 시작일 뿐입니다. 도시 공간들은 서로 저마다 다른 냄새와, 소리와, 촉감과 맛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하나씩 찾아낼 때 인천은 더 많은 색깔과 개성을 가진 도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것이 지금까지의 도시 공간을 만들어 온 방식과는 역시나 조금은 달라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까지 더 깨끗한 도시, 더 보기 좋은 도시, 시각적으로 풍성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많은 다른 감각은 악취나 소음으로 취급받으며 도시에서 배척받았습니다. 또 지키고 싶은 어떤 소리나 맛은 잘 지어진 공연장 건물이나 음식 문화의 거리 입간판 같은 것을 통해 시각적 요소로 흡수되어 왔습니다. 최근의 도시 계획의 추세도, 사람들의 취향도 그렇듯 어떤 냄새나, 소리, 맛과 촉감은 위로부터의 계획 없이도 그냥 존재함으로써 더 가치있고 사람들이 찾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공간에서 또 다른 감각을 만들어 내려는 공간 계획이 도시 공간을 더 밋밋하게 만들 것입니다.
저는 종종 관광(sightseeing)과 여행(travel)이라는 두 단어가 주는 미묘한 차이를 생각하곤 합니다. 언젠가부터 단체 관광보다 개인 단위의 여행이 더 선호되고, 에어비앤비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숙박 방식이 유행하고, 여러 도시를 하루 이틀씩 여행하는 것보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여행이 각광받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어떤 장소에 대한 기억이 단순히 보는 것만으론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 인천으로 여행을 온다면, 우리가 인천을 보여줄 것인지, 인천을 느끼게 해줄 것인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여행뿐 아니라 일상의 인천을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도시 공간에서 눈을 감고 있어도 행복한 공간은 얼마나 될까요.
글/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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